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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김정일 변수 초라한 퇴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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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정치권의 대립 쟁점 가운데 유일하게 여권이 유리한 고지에서 쟁점화할 수 있는 수단이 남북 정상회담이다. 정상회담이 정치구도를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서울신문 1월 16일자 기사 중 김형준 국민대 교수)

"올해 남조선의 대통령 선거는 평화냐 전쟁이냐, 통일이냐 분열이냐를 가늠하는 첨예한 대결장이다. 애국하는 모든 남녘 겨레는 반보수 대연합을 실현해 보수세력의 재집권 음모를 저지 파탄해야 한다."(1월 17일 북한 '정당.정부.단체 연석회의'의 성명)

2007년 대선의 해에 들어서며 한국의 정치권과 북한에선 이른바 '김정일 대북 변수'가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았다. 남북 정상회담에서 핵실험에 이르기까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택과 결정은 한반도 정세와 한.미 관계에 영향을 줬고, 한국 유권자의 표심을 흔드는 주요 변수가 될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 대선 정국의 후보들, 각 당 경선에 참여했던 주요 정치인들 가운데 평양을 방문해 김 위원장을 만나거나 북한의 지도자를 면담하고 돌아와 선거 캠페인에 활용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1987년 KAL기 폭파사건, 97년 안기부에 의한 이른바 '북풍'사건, 2000년 총선 직전 남북 정상회담 발표, 2002년의 서해교전 등이 역대 선거 때마다 불거졌던 김정일 위원장 혹은 북한 관련 변수들이었다. 이번 대선에선 김정일 대북 변수가 불리하게 작용하는 걸 막기 위해 한나라당의 정형근 의원이 올 초 두 차례 평양 방문을 시도했다가 무산된 적이 있다. 한나라당은 자신들의 전통적 태도 때문에 '수구꼴통' '냉전수구'라는 소리를 선거판에서 듣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8월 들어 노무현-김정일 정상회담 계획이 발표되자 '평양발 바람'은 금세 현실화하는 듯했다.

예컨대 이런 발언이다.

"남북 정상회담 개최는 이번 대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선을 분명히 해준 것이다. … 대선 뒤 정치적 결단을 밀고 가면 차기 정부 출범과 동시에 평화협정까지 갈 수 있다."(8월 9일 정동영 당시 신당 경선 후보)

그러나 현재까지 평양발 바람은 한국에 불지 않고 있다. 14일부터 서울에서 15년 만의 총리회담이 열리고 있지만 대선 민심은 거기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 북적대는 워커힐 호텔(회담장) 주변의 한 음식점 주인은 "왜 경찰들과 기자들이 많이 와 있냐"며 되물을 정도다. 김정일 대북 변수의 초라한 퇴장을 보는 느낌이다.

최상연 정치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