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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광고 다음 정권으로 넘겨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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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참 희한한 공청회도 다 봤다. 그제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열린 ‘지상파 방송 중간광고 허용 범위 확대 방안 마련을 위한 공청회’ 얘기다. 방송위원회가 마련한 공청회인데, 행사 이름이 얄궂다. ‘중간광고 허용 여부’가 아니라 ‘허용 범위 확대 방안’을 토론하는 자리란다. 말하자면 중간광고를 도입하기로 이미 다 결정해 놓고 장식품으로 빨간 리본 하나 달아 주려고 만든 공청회다. “결혼을 반대하는 사람에게 신혼여행지를 추천하라는 격”이라는 한 토론자의 비유가 정곡을 찔렀다.

한창 재미있어지는 TV 프로그램을 중단하고 광고를 내보내는 것이 중간광고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안 그래도 경영이 어려운데 디지털방송 전환 작업까지 하려면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다며 중간광고를 보챈다. 방송사들이 흑자를 내고 있고, 디지털 전환 비용에 비하면 중간광고 수입은 언 발에 오줌 누기인 데도 일단은 먹고 보자고 덤빈다. 지상파가 시장을 독과점하던 ‘무지개 같은 나날’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KBS는 별도로 TV 수신료 인상까지 요구하고 있다. 꿩 먹고 알 먹자는 심보니 곱게 보이겠는가.

게다가 경영 혁신은 뒷전이다. KBS의 방만한 경영은 이미 호가 났다. 공영의 탈을 쓴 MBC는 상업방송 SBS와 똑같이 광고 수입만으로 운영되는 데도 SBS의 인원은 MBC보다 훨씬 적다. 그렇다고 MBC가 SBS보다 더 ‘공영적’이라고 자신할 수

있는가. 나는 그런 증거를 찾을 수 없다. 만약에, 정말로 만약에 새해에 정권이 교체될 경우 KBS가 새 정권 입맛에 맞는 사장을 모시고 오랜만에 코드 맞추기에 나서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중간광고 문제를 지상파 TV와 케이블 TV·신문업계 간 ‘밥그릇 다툼’으로 여기는 시각도 좁게 보면 일리가 있다. 하지만 방송사 입장에 서더라도 중간광고가 길게 보면 독(毒)이라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시청자의 권리를 일방적으로 빼앗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많은 이가 단지 광고가 없다는 이유로 MBC보다는 KBS의 밤 9시 뉴스를 더 선호한다.

상업방송의 중간광고가 허용된 일본의 최근 연구 사례를 보자. 게이오대 사카키 히로부미(사회심리학) 교수가 727명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이 한창 절정에 이를 때 내보내는 중간광고에 대해 설문조사를 했다. 86%가 ‘불쾌하다’고, 74%는 ‘짜증이 난다’고 답했다. 해당 광고를 내보낸 TV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84%가 ‘호감을 느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중간광고에 등장한 상품의 호감도에 관해서는 절반가량이 ‘별 느낌이 없다’고 각각 응답한 가운데 42%가 ‘호감을 느낄 수 없다’고, 34%는 ‘사고 싶지 않다’는 항목을 택했다. 한마디로 말해 마이너스 광고효과다. 결국 중간광고는 시청자에게 불쾌감만 더할 뿐 도깨비 방망이가 아닌 것이다.

나는 10월유신 직후인 1973년 비상국무회의에서 폐지된 중간광고가 언젠가는 부활될 것이라고 본다. 선진국에 비해 형편없이 적은 TV 수신료도 때가 되면 인상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둘 다 지금은 시기가 아니다. 전제조건이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우선 군살부터 빼야 한다. 그래야 국민의 신뢰와 동의를 얻는다. 나아가 미디어 환경 변화의 큰 틀 속에서 중간광고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 5공이 완력을 써 설립한 방송광고공사를 이대로 두어야 하는지, KBS 2TV나 MBC의 ‘말로만 공영’ 체제가 바람직한지 철저히 따져야 한다.

그래서 공영다워진 공영방송에 인상된 수신료를 제공하고, 민영방송에는 중간광고를 허용하는 게 옳다. 그런데도 방송위원회는 지난 2일 우격다짐으로 중간광고를 밀어붙였다. 무리수를 저질러 기정사실화해 놓고 나서 그제 공청회에서는 “지난 1년간 외부 의견을 충분히 듣지 않은 것을 겸허히 반성”(최민희 방송위 부위원장)한단다. 뒤에서 누가 쫓아오기에 그리도 황급히 내달았는지 방송위에 묻고 싶다. 아무래도 중간광고 문제는 다음 정권으로 넘기는 게 순리다.

노재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