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7가] 보라스에 맞짱구칠 선무당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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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난(亂)'은 일어났습니다. 바로 수퍼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의 난입니다. 보라스는 뉴욕 양키스와 3년간 무려 8100만 달러의 계약이 남아 있던 알렉스 로드리게스를 설득해 자유계약선수(FA)를 선언케 하고 시장을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웬만한 스몰 마켓 구단의 매입가에 해당하는 거액의 몸값 탓인지 전혀 입질이 없습니다. 지난주 올랜도 단장 회의서 몇몇 단장과 만났으나 의례적인 인사치레 뿐이었습니다.

로드리게스에 관심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보스턴의 테오 엡스틴 단장은 아예 회의를 마치고 공항으로 떠나면서 "로드리게스가 결코 주제가 아니었다"고 분명히 못을 박았습니다.

단장회의서 직접 '로드리게스가 어느 팀으로 갈 것 같은가?'라는 질문을 던져 취합 한 USA투데이의 '50년 야구기자' 할 보들리가 전한 소식도 냉담하기만 합니다. 30팀 중 16팀의 단장들로부터 답변을 들었는데 가장 많은 7명이 LA 에인절스를 꼽았답니다. 하지만 그들도 로드리게스 아니 보라스가 원하는 10년 3억5천만 달러를 받기는 힘들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또 대부분의 단장들은 로드리게스가 FA를 선언하면 결코 잡지 않을 것이라고 했던 뉴욕 양키스가 변심하지 않는 한 보라스의 대박의 꿈은 이뤄지기 힘들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브라이언 캐시먼 양키스 단장은 아직도 그 방침이 확고부동합니다). 그나마 단장들이 내놓은 액수는 샌프란시스코가 8~10년에 2천만 달러를 조금 넘는 수준이고 가장 유력하다는 에인절스도 많아야 8년간 평균 2800만 달러에 6년 이후에는 구단 옵션을 집어 넣을 것이라는 관측입니다. 어찌 됐든지 평균 3천만 달러를 받기는 힘들다는 게 단장들의 결론입니다.

시장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전혀 예상치 못한 보라스의 반응이 나오고 있습니다. 당초 양키스와의 협상에서 3억5천만 달러를 요구한 것으로 대문짝만하게 보도됐던 보라스가 "우리는 어느 팀 어느 누구와도 돈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고 발뺌하고 나선 것입니다. 천하의 보라스가 꼬랑지를 내리는 것일까요?

하긴 보라스가 올해도 난을 일으킨 수법은 전혀 새로운 게 없는 케케묵은 것이기도 했습니다. 먼저 100페이지가 넘는다고 하는 로드리게스의 향후 10년간 예상 성적(거기에는 당연히 배리 본즈의 홈런 기록을 깰 것이라는 것도 담겼겠지요.)에 대한 리포트를 꼽을 수 있는데요. 내년이면 33세가 되는 로드리게스의 활약상에 대해 기록이라면 꿰고 사는 단장들이 과연 얼마나 궁금해 할까요?

두 번째는 7년 전 텍사스와 10년 2억5200만 달러의 계약을 하면서 써먹었던 논리 곧 로드리게스를 데려옴으로써 구단이 얻게 될 중계권료 관중 증대 등 경제 효과인데요. 이미 그것은 뉴욕 구단들에 여지없이 일축됐습죠. 뉴욕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빅 마켓 팀들에도 과연 텍사스같은 시골 팀에 통했던 흥행 논리가 성립할 수 있을까요? 언감생심이요 착각도 이만 저만이 아니지요.

이렇게 자신의 말발이 안서는 탓일까요? 보라스는 그동안 궁할 때마다 써먹었던 '반칙(?)'도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 선수 노조는 '단장회의에서 흘러나오는 보도를 보면 구단들이 자유계약선수의 몸값 상승을 막기 위해 담합하고 있다는 혐의가 짙다'는 항의 겸 경고 성명을 발표했는데요. 그것이 보라스의 사주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은 명백합니다.

스토브리그의 뚜껑이 막 열렸습니다만 보라스가 젊고 똑똑한 단장들에게 기선을 빼앗긴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동안 애용해왔던 논리와 수법이 철저히 깨지고 외면당하면서 '고등 바보' 취급을 당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이제 문제는 단장들과는 선수를 바라보는 시각이나 구단 운영의 책임에서 전혀 다른 구단주들입니다. 더욱 보라스는 몇 몇 구단주나 CEO들과 친분이 돈독합니다. 로드리게스가 텍사스와 미증유의 대박 계약을 했던 데도 톰 힉스 구단주와 보라스의 친분이 적지 않게 작용했습니다.

매스컴으로부터 대놓고 '바보' 취급을 당하는 '제2의 힉스' 같은 선무당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습니다. 과연 '고등 바보'에게 제 목에 방울을 달게 해주는 '저등 바보'가 나올 것인지. 두고 봅시다.

미주중앙 구자겸 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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