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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쟁과대안

반복되는 학교 운동선수 체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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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최근 다시 빈발하고 있는 스포츠 지도자의 폭력문제. 근원적인 재발 방지책은 없는 것일까. 토론에 참가한 두영택 뉴라이트교사연합 상임대표, 조광래 전 FC서울축구감독, 사회자 강치원 강원대 교수, 김승곤 대학체육회 자정운동추진본부장, 정형균 한국체대 교수(왼쪽부터). [사진=변선구 기자]

 한동안 잠잠하던 선수 폭행이 또 빈발하고 있다. 최근 고려대 아이스하키팀 총감독이 선수들에게 뜨거운 소주를 먹이고 흙바닥에 뿌려 놓은 과자 부스러기를 입으로 주워 먹게 한 ‘엽기적 사건’이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앞서 올 9월에는 수영 대표팀 코치가 태릉선수촌에서 합숙 중인 대표선수들을 구타하고 폭언을 일삼다가 퇴출됐다. 같은 달 전북 군산의 한 중학교에서는 유도부 코치가 팀을 이탈했다는 이유로 제자에게 야구 방망이를 휘두른 사실이 드러났다. 군대에서도 사라진 폭행 악습이 학원스포츠에 뿌리 깊이 남아 있는 이유는 뭘까. 때리면 성적이 올라서? 아니면 지도자의 성품이 못돼 먹어서? 대한체육회가 체육 현장의 폭력과 금품 비리를 추방하는 자정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이는 와중에 발생한 폭행 사건이라 예사롭지 않다.

 선수 체벌을 막을 방도는 없는지 현장의 전문가들에게서 의견을 들어봤다.

 
 ▶강치원(사회)=학원스포츠에서 지도자가 선수들을 폭행하고 비인간적 처사를 한 일들이 또 일어났다. 특히 고려대 아이스하키 총감독의 엽기적 행동은 충격적이다. 왜 이런 일들이 반복해 일어나는지 알 수 없다.

 ▶김승곤=올해 대한체육회에서 자정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나서 개선되기보다 이런 사건들이 잇따라 터지는 바람에 당혹스럽다.

 ▶정형균=나 역시 지도자 생활을 할 때 선수들에게 손을 대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리석은 일이다. 체벌로 성적을 올리겠다는 것은 시대의 흐름에 뒤떨어진 일이다. 구태의연한 지도법이다.

 ▶조광래=체벌을 통해 지도자가 무엇을 얻으려고 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선수들에게 무엇인가 자극이 필요했을 것이고 목적을 위한 다소간의 체벌은 필요할 수도 있다. 물론 목적도 이유도 없다면 체벌이 아니라 폭력이다.

 ▶두영택=선수층이 두텁거나 인기가 높은 종목과 달리 선수층이 엷은 비인기 종목에서는 좋은 선수를 찾기 어렵다. 그럼에도 좋은 선수를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강압적으로 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분명히 지시했는데도 잘못된 행동이 고쳐지지 않으면 체벌을 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김=구조적 문제도 있겠지만 이번 고려대 아이스하키부의 경우에는 감독 개인적 성향이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다. 감정적인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군대에서도 폭력이 없어지고 있다. 그런데 학원스포츠에 이런 악습이 남아 있다는 건 수치다. 지도자들의 인권 의식이 중요하다.

 ▶정=지도자는 선수 때의 경험을 답습하게 마련이다. 나 역시 1977~78년 처음 지도자 생활을 할 때는 선수 때 맞았던 것처럼 체벌을 했고, 실제로 좋은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80년 중동 국가에 지도자로 나갔는데 체벌을 할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지도법을 찾게 됐다. 82년 귀국해 한국체대 핸드볼팀을 창단했고 체벌 없이도 우승을 일궈 냈다.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체벌 없이도 성적 향상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사회=우리나라에는 체벌을 어느 정도 묵인하는 풍토가 있는 것도 사실 아닌가.

 ▶두=체벌을 신체 구타에 한정하는 것 같은데, 사실 얼차려나 인격 무시도 체벌의 일종이다. 외국에도 인격 무시나 얼차려 같은 게 많이 있다. 오히려 우리 지도자들은 사정에 따라 관용도 발휘하지만 외국의 경우 철저히 처벌한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선수층이 두터운 종목에서는 체벌할 필요가 없다. 얘기했는데도 고쳐지지 않을 경우 선수를 그냥 도태시켜 버린다. 하지만 선수층이 엷은 종목의 경우 선수를 안고 갈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체벌이 나온다. 두 경우 중 어느 쪽이 더 나쁜 폭력인가. 난 전자가 더 나쁘다고 본다.

 ▶김=체벌의 범위가 너무 확대됐다. 이번에 문제가 된 고려대 아이스하키부 엽기 얼차려의 경우 신체적 상해는 없다지만 상대의 인격을 짓밟았다. 군산의 한 중학교 유도부 구타 사건의 경우 야구 방망이로 100여 차례 때려 피부가 괴사됐을 정도다. 문제를 비인격적 처사 내지 상해 수준의 구타에 한정해야 한다.

 ▶조=‘사랑의 매’라는 말도 있듯이 체벌에 사랑이 담겨 있느냐가 중요하다. 고교 선수 시절에 공군사관학교에 진 뒤 운동장 50바퀴를 뛴 일이 있다. 울면서 토하면서 뛰었지만 인격적 모독을 당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감독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고 강한 정신력이 길러졌다.

 ▶두=다시 한번 구조적 문제를 얘기하겠다. 외국은 클럽팀에서 즐기는 운동을 하지만 우리는 학교체육이 입시와 연결돼 성적 지상주의로 나갈 수밖에 없다. 아이들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동기 유발 차원에서 체벌을 한다. 이것이 ‘사랑의 매’다. 국내 학원스포츠의 경우 목표와 성과를 내기 위해 지도자들은 쫓기는 느낌을 갖고 있다. 열성적인 학부모들은 성적이 안 나오면 지도자를 압박한다. 대학에 잘 보내는 지도자가 좋은 지도자로 평가받는 현실이다.

 ▶김=체벌이 폭력이냐 교육이냐 하는 것은 상대적 개념이다. 태릉선수촌 수영 코치 구타 사건의 경우 선수들의 진술서를 받아 봤는데 어떤 선수는 ‘사랑의 매’라고, 또 어떤 선수는 ‘폭력을 위한 폭력’이라고 대답했다. 지도자가 자신의 신분을 유지하려면 성적을 내야 한다. 성적을 내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체벌이다 보니 매에 의존한다. 부모들이 지도 편달 부탁한다고 하면 지도자는 몽둥이부터 생각한다. 요즘 미디어와 정보기술(IT)의 발달로 선수들은 해외의 좋은 경기를 다 본다. 지도자가 노력해야 한다.

 ▶정=지도자와 선수 사이에는 신뢰가 있어야 한다. 신뢰의 근원은 지도자의 인격과 전문성이다. 만약 선수들이 지도자를 신뢰한다면 지도자의 요구를 받아들일 것이고 얼차려조차 달게 받을 것이다. 그러면 폭력이나 체벌도 자연스럽게 없어질 것이다. 지도자도 인간이다 보니 선수에게 불만을 가질 수 있다. 그러면 감정이 개입돼 폭력이 나오게 되는데 그런 것을 피하는 게 지도자의 덕목이다.

 ▶사회=지도자의 자질은 어떻게 검증할 수 있을까.

 ▶정=현재 한국체육과학연구원에서 1급 지도자 자격증을 발급한다. 그런데 이 자격증이 교육자로서의 능력은 담보하지 못한다. 지도자는 기술뿐만 아니라 지적·심리적 자질도 중요하고 이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 지금은 이런 것을 전혀 따져 보지도 않는다. 2급 지도자와 생활체육지도자(사범)도 마찬가지다. 교육적인 코칭 기법 같은 게 없으니 경험에 의존해 자신이 배웠던 대로 가르치게 된다. 전반전이 끝나고 선수를 때리는 감독들, 어렸을 때 그렇게 배운 사람들이다.

 ▶김=교육과 유리된 학교 체육도 한 원인이다. 조금씩 바뀌고는 있지만 선수들은 수업을 전폐한다. 만약 기존 지도자들이 학습권을 보호받아 공부를 했다면 어땠을까. 충분히 교육받으면서 선수 생활을 했고 지도자가 됐다면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단기간에 결과를 내놓지 않으면 생계 유지조차 어려운 지도자들의 위상도 빼놓을 수 없다.

 ▶사회=다른 나라의 경우에는 어떤가.

 ▶김=일본은 선수들이 모든 수업에 참가한 뒤 방과 후에 운동을 한다. 일본은 고시엔 야구대회에 참가하는 고교 팀만 4000개가 넘는다. 우리는 고교야구 등록 선수가 4000명이 안 된다. 한·일 우승팀끼리 붙으면 한국이 이길 때가 많다. 하지만 이기는 게 자랑이 아니다. 우리는 야구만 하고 일본은 공부를 다한 뒤 야구를 한다. 공부하는 선수가 중요하다.

 ▶두= 은메달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곳이 한국이다. 일본도 우리와 같은 학교체육에서 출발했지만 내용적으로는 클럽체육으로 돌았다. 우리도 클럽체육 쪽으로 바뀌어야 한다. 예전에는 체력이 국력이라고 했는데, 요즘 비인기 종목의 경우 초토화됐다. 선수가 줄었는데 성적을 내야 하니 선수를 쥐어짜게 된다. 빈곤의 악순환이다.

 ▶김=대한체육회에서도 클럽스포츠 활성화에 나섰다. 현재는 엘리트 선수를 하려면 선수가 무조건 학교 선수로 등록해야 되는데 앞으로는 클럽 선수들도 엘리트 선수로 등록할 수 있도록 체육회가 적극 검토 중이다.

 ▶사회=클럽스포츠로 전환되면 체벌이 감소할 것으로 보나.

 ▶김=그렇다. 지금은 지도자가 돌아다니면서 애들을 뽑은 뒤 부모에게 운동으로 성공시켜 주겠다고 약속한다. 자질이 부족하니 때려서 가르치는 것이다.

 ▶조=자질이 부족한 선수는 언제나 있다. 그렇지만 때린다고 정말 선수의 능력이 향상될 수 있을까. 많이 때리는 팀의 경우 소속팀에서는 성적이 난다. 하지만 대표팀에 들어오면 얘기가 달라진다. 맞고 운동한 선수들은 자생력이 없고 기량 유지가 안 된다. 대표선수라면 창의력·이해력을 갖춰야 한다. 한국 축구의 문전 처리가 나쁘다고들 얘기하는데 이는 성장 과정이 나쁘기 때문이다. 맞고 자란 선수에게 창의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두=한국 학원스포츠의 현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이상적으로는 다 좋은 얘기다. 때리지 않고 맞지 않으면 처음에는 서로에게 좋다. 하지만 상급 학교에 진학하지 못한다면 결국 아이들에게는 결과적으로 나쁜 일 아니겠나.
 ▶정=클럽스포츠도 좋지만 현재는 시설 환경이 뒷받침이 안 된다. 핸드볼을 예로 들어 보자. 유럽의 경우 모든 체육관이 농구·배구·핸드볼을 할 수 있도록 지어진다. 그런데 한국은 한두 종목 이상을 하기 어렵다.

 ▶김=교육인적자원부에 학원체육을 담당하는 공무원이 한 명이다. 체육·급식·보건이 한 부서로 묶여 있다. 6공화국 때 체육청소년부가 있었다. 그게 문화체육부로 바뀌었고 지금은 문화관광부다. 참여정부 들어서는 부처 내에서도 체육 담당국이 하나로 통합됐고 차관보도 없어졌다. 초라한 대한민국 체육의 현실이다.

 ▶사회=체벌, 아니 선수 폭행이 문제라는 데는 다 동의하는 것 같다. 막을 방법은 없나 .
 ▶정=지도자 자격증 발급 때 인성교육 프로그램을 필수적으로 집어넣고 이를 검증하도록 해야 한다. 또 대한체육회나 경기단체들이 지도자 세미나 등을 통해 선수 인권 등에 관한 지도자 재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김=사실 대한체육회는 이번 문제에 대해 무한책임을 지고 있다. 일본도 우리와 유사한 과정을 겪으면서 같은 고민을 했다. 그 결과 윤리 가이드라인을 정하고 지도자에 대한 강습회와 연수회를 반복적으로 실시해 좋은 결과를 얻었다. 또 학계와 연계해 선수들이 따라올 수 있는 지도법 개발에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요즘 같은 저출산사회에서 어떤 부모가 폭력 얘기를 듣고도 운동을 시키겠나. 폭력은 스포츠의 몰락을 불러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정=경험이 없는 지도자일수록 강압·윽박지름·체벌에 의존한다. 지도자들에 대한 지도법 클리닉 같은 것도 강구해야 한다.

 ▶두=지도자뿐만 아니라 선수 때부터 인권·자율 교육을 시켜야 한다. 학생에게는 배울 수 있는 때가 있다. 이때를 놓치면 다시는 배울 수 없다. 지도자는 비난에 대한 걱정으로 선수들의 잘못을 방관해서는 안 된다. 열 번 얘기해서 안 된다면 사랑의 매도 훈육의 한 방법이다. 이를 나쁘다고만 몰고 가서는 안 된다. 물론 이번 고려대 아이스하키부의 경우처럼 인격 모독식 폭행은 사회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런 것은 의도가 좋다고 해도 인정해서는 안 된다.

정리=장혜수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