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안타까운 中.대만 대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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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국제 스포츠무대에서의 남북한 장외대결을 연상할만큼 두개의 중국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1일 저녁 이곳 히로시마의 그랜드호텔에서 열린 아마드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의장 주최의 환영파티에 모습을 드러낸 중국(中國)의 우사오쭈(伍紹祖)국가체육위원회위원장과 대만의 쉬리더(徐立德)행정원부원장의 대면은 살벌할만큼 냉랭했다 .
좁은 공간의 연회장 사정탓에 껄끄러운 만남을 피할수 없었음에도 이들은 마치 숙련된 배우의 연기인양 서로 보고도 못본 척 그대로 지나쳤다.
웨이지중(魏紀中)중국팀부단장은 한술 더떠 徐부원장을 못봤다고천역덕스럽게 시치미를 떼는 바람에 일부 외신기자들의 실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지난달초 리덩후이(李登輝)대만총통의 방일문제를 계기로 불거져나온 中國-대만의 신경질적인 다툼이 한달 가까운 이제까지도 히로시마 상공에 검은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
원폭의 피해를 강조하려던 히로시마아시안게임조직위(HAGOC)의 당초 의도가 무색하게 이날 연회장에도 중국과 대만은 물론 한국과 일본,게다가 세계 주요 통신사와 중국의 행보에 민감한 동남아국가들의 취재진이 북새통을 이뤄 개막초기 이 번대회 최대의 관심사는 역시 중국-대만의 충돌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이 때문에 이곳 프레스센터에선 중국 또는 대만선수단이 철수했다는등 장난기 가득한 루머까지 나돌아 가능한 모든 경우를 상정해야 하는 기자들이 혹시나 하는 생각에 확인길에 나섰다가 허탕을 치고 돌아오기 일쑤다.
또한 프레스센터 주위 곳곳에서 기자들의 웅성거림이 있게되면 그안에 반드시 서로 상대방 비난에 열을 올리는 중국 또는 대만대표단 고위관계자가 있다고 가정해도 틀리지 않게 됐다.
이들 양안(兩岸)대표단의 일거수 일투족을 따라 이리저리 몰려갔다가 몰려오는 중국과 대만기자들을 바라보는 여타 국가 기자들의 얼굴엔 한심하다는 투의 히죽거림이 번진다.
그러나 한국기자들의 마음만큼은 결코 편치 않다.
과거 이보다도 더한 대립으로 일관,냉랭함을 넘어 항상 살벌한것으로 표현되던 남북한의 대결구도를 보며 이들 외신기자들이 얼마나 웃었을까 하는 생각에 서글퍼지는 것이다.
좀더 성숙되고 의연한 모습으로 남북한이 손을 잡을 날은 과연언제쯤일까.
[히로시마=劉尙哲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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