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 기름 유출 사고에도 안도하는 까닭은 배·인력 빌려 써 책임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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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7일 오전 짙은 안개로 뒤덮인 미국 샌프란시스코 앞바다에서 대형 컨테이너선 ‘코스코 부산호(사진)’가 다리 교각을 들이받는 사고가 일어났다. 5500 TEU(1TEU는 컨테이너 한 개)급 컨테이너선이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 항구를 떠나 아시아를 향하던 중 샌프란시스코 만을 가로지르는 베이 브리지 교각 받침대에 부딪친 것이다. 사고로 선체 30m가 부서지는 바람에 기름이 22만L나 흘러나와 바다를 오염시켰다. 미 언론은 “근래 최악의 해상 기름 유출 사고”라고 보도했다. 미 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와 해안경비청은 사고 조사에 나섰다. 사고 선박에는 한국 최대 해운회사인 한진해운의 로고가 선명했다.

사고 발생 1주일이 지났지만 한진해운 직원들은 13일 사태 파악과 수습에 여전히 분주했다. 하지만 큰 사고인데도 시름은 크지 않아 보였다. 한진해운이 사고 선박을 소유하거나 운항하는 주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코스코 부산호는 한진해운이 그리스 용선 회사인 ‘시너지 매리타임’에서 빌려 사용해 왔다. 시너지 매리타임은 2001년 한국에서 이 배를 건조한 뒤 한진해운과 용선 계약을 했다. 코스코 부산호의 선장 및 선원 20여 명은 모두 용선회사 소속 중국인들로, 한진해운 소속은 한 명도 없었다. 배와 인력을 모두 임차한 경우는 사고 관련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해운회사가 배를 빌려 쓰는 건 초기 투자비가 적고 관리가 쉽기 때문이다. 물동량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전 세계적으로 해운회사 소유의 배인 ‘사선(社船)’보다 빌리는 ‘용선(傭船)’이 더 많은 것으로 추산된다. 한진해운은 용선이 전체 수송량(TEU 기준)의 65%다. 배를 빌린 해운회사의 이름을 표기하는 게 국제 관례다.

따라서 한진해운 입장의 사고 수습이라면 오클랜드 항구에 발이 묶인 화물을 하루빨리 고객에게 인도하는 일이 더 급하다. 화물은 헌 종이와 고철·과일 등이다. 고정욱 한진해운 차장은 “현재까지 화물 파손은 없는 걸로 안다”며 “화물을 실어올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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