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FTA 급하다고 개인 빚까지 갚아주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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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의 국회 통과가 무산되자 정부가 추가 지원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심지어 농협에서 빌린 개인 부채의 이자까지 깎아줄 생각이란 얘기다. 이런 것을 요구하는 국회의원이나, 해주겠다는 정부나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나라를 어떻게 끌고 가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비준안 통과가 급해서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떼를 쓴다고 정책자금도 아닌, 농협의 개인대출 이자까지 정부가 갚아주겠다니 말이 되는가.

농촌 문제에 관한 한 지금까지 정부는 지나치게 양보와 선심으로 일관해 왔다. 농민이 반발할 때마다 지원부터 약속했다. 정치권의 입김도 작용했다. 그 결과 FTA 관련 지원은 엄청 늘어났다. 기금 1조2천억원, 정책자금 금리 인하, 연대보증 피해자금 상환연장 등…. 향후 10년간 1백80조원이란 천문학적 지원이 예정돼 있다.

농업의 상징적 의미나 식량 안보의 중요성 등을 감안할 때 경제논리만으로 접근할 수는 없다. 어려움이 가중될 농민을 위한 지원은 필요하다. 하지만 정부가 이런 식의 미봉과 당근으로만 대처하다 보니 농촌이 살아나기는커녕 농심(農心)의 해이만 키웠고, 결국 오늘의 사태를 자초한 것이다.

농민단체나 농민 역시 도가 지나치다. "비준 반대"를 외치며 각목을 휘두르고 차를 불태우는 모습은 과연 이곳이 법치 국가인지, 이들은 어느 나라 사람인지 분간이 안 갈 지경이다. 개방은 피할 수 없는 대세다. 그래서 정부가 세금으로 엄청난 지원을 약속하지 않았는가. 훨씬 어려운 도시영세민도 있다. 인구의 8%인 농민을 위해 정부가 이 정도 카드를 내놓았으면 농민들도 92%의 국민을 생각해야 하지 않는가.

정부는 데모한다고 돈 더 주는 자세를 버려야 한다. 이런 식으로 접근하니까 시위는 더 과격해지고 합리적으로 문제를 풀 생각을 아예 하지 않는 것이다. 대통령과 장관이 나서서 국회의원과 농민을 설득하라. 의원과 농민들도 더 이상 나라를 어렵게 만들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