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첫 정악 스승인 김영윤(앞줄 맨 왼쪽) 선생님이 가야금을 합주하고 있다.
첫 스승인 김철옥 선생님에게 가야금을 배울 때 나는 민요와 간단한 음악만을 익혔다. 이때 쓰이는 것은 산조 가야금이다. 크기가 작은 편이고 앞은 오동나무 공명판이지만 옆판과 뒤판을 다른 나무판을 대고 짜서 만들며 가야금의 양쪽 끝이 모두 직선으로 돼 있다.
오동나무 공명통 아래 끝에 따로 단단한 나무로 만든 양의 귀와 머리처럼 양쪽으로 둥글게 나와있는 양이두(羊耳頭)를 꽂고 거기에 현을 매달아 놓은 것이 법금이다. 법금은 고명통 전체가 한 개의 통나무로 되어 있기 때문에 뒷면을 끌로 파내서 만든다. 이 양이두를 하고 있는 법금과 만나면서 나의 정악 공부가 시작됐다. 국악원에서 유일한 가야금 악사였던 김영윤 선생님에게 배웠다.
“여기에서는 이런 악보를 가지고 옛 궁정의 음악을 배운다.”
김 선생님이 보여준 누런 악보 책도 내게는 충격이었다. 그때까지는 악보 없이 구전(口傳)으로만 가야금을 배웠기 때문이었다. 반듯한 네모 칸에 음의 이름, 즉 율자(律字)를 적은 정간보(井間譜)를 보고 ‘드디어 정통으로 뭔가를 배우기 시작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동네에서 가야금을 조금 배우긴 했습니다.” 첫 만남에서 내가 운을 떼자 김 선생님은 아주 좋아하는 기색이었다. “지금 같은 피란 때 가야금을 배운다는 사람이 있다니 반갑다”며 “열심히 배우라”고 격려했다.
취미로 가야금을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단체 강습 외에는 개인적인 제자가 별로 없었던 모양이었다. 이렇게 기뻐하는 선생님과 함께 정악 공부를 하기 위해 학교가 끝나면 책가방을 들고 국악원으로 향했다. 몇 시간이랄 것도 없이 가야금을 배우고 집에 오는 게 나의 일과가 됐다. 이후 국악원에서 7년 동안 공부했다.
가장 먼저 배운 곡은 영산회상(靈山會相) 중 세영산(細靈山) 이다. 고려 시대에 석가모니가 설법하던 영산회상이라는 모임을 노래한 악곡에서 비롯돼 조선 시대 선비들에 의해 사랑방 풍류로 발전한 음악이다. 세영산은 그중에서도 굉장히 단순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이 가락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덤덤한 곡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연습하지 않을 때도, 집에 와서도 머릿속에서 항상 이 곡이 흘렀다. 가야금을 잡지 않았을 때에는 입으로 계속 흥얼거렸다.
김철옥 선생님에게 재미있게 배울 때와는 또 다른 희열을 맛본 것이다. 가야금의 완전히 다른 세계를 보게 됐고 가야금에 대한 흥미는 점점 커졌다. 김영윤 선생님은 이런 내게 더욱 애정을 가진 것 같았다. 매일 가르쳐 주는 것은 물론이고 일요일에는 우리 집에 와서 나를 가르칠 정도였다.
황병기<가야금 명인>가야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