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오동 천년, 탄금 50년 10. 법금과의 만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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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필자의 첫 정악 스승인 김영윤(앞줄 맨 왼쪽) 선생님이 가야금을 합주하고 있다.

민속음악을 연주하는 산조 가야금과 달리 궁중음악인 정악을 타는 가야금은 법금(法琴), 혹은 풍류 가야금이라고 불린다. 법금의 꼬리 부분은 양(羊)의 머리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크고 기품 있는 법금을 처음 본 것은 1951년 김영윤 선생님의 방에서였다. 좀 더 체계적인 공부를 해보고 싶어 무작정 찾아간 국립국악원이었다.

첫 스승인 김철옥 선생님에게 가야금을 배울 때 나는 민요와 간단한 음악만을 익혔다. 이때 쓰이는 것은 산조 가야금이다. 크기가 작은 편이고 앞은 오동나무 공명판이지만 옆판과 뒤판을 다른 나무판을 대고 짜서 만들며 가야금의 양쪽 끝이 모두 직선으로 돼 있다.

오동나무 공명통 아래 끝에 따로 단단한 나무로 만든 양의 귀와 머리처럼 양쪽으로 둥글게 나와있는 양이두(羊耳頭)를 꽂고 거기에 현을 매달아 놓은 것이 법금이다. 법금은 고명통 전체가 한 개의 통나무로 되어 있기 때문에 뒷면을 끌로 파내서 만든다. 이 양이두를 하고 있는 법금과 만나면서 나의 정악 공부가 시작됐다. 국악원에서 유일한 가야금 악사였던 김영윤 선생님에게 배웠다.

“여기에서는 이런 악보를 가지고 옛 궁정의 음악을 배운다.”

김 선생님이 보여준 누런 악보 책도 내게는 충격이었다. 그때까지는 악보 없이 구전(口傳)으로만 가야금을 배웠기 때문이었다. 반듯한 네모 칸에 음의 이름, 즉 율자(律字)를 적은 정간보(井間譜)를 보고 ‘드디어 정통으로 뭔가를 배우기 시작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동네에서 가야금을 조금 배우긴 했습니다.” 첫 만남에서 내가 운을 떼자 김 선생님은 아주 좋아하는 기색이었다. “지금 같은 피란 때 가야금을 배운다는 사람이 있다니 반갑다”며 “열심히 배우라”고 격려했다.

취미로 가야금을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단체 강습 외에는 개인적인 제자가 별로 없었던 모양이었다. 이렇게 기뻐하는 선생님과 함께 정악 공부를 하기 위해 학교가 끝나면 책가방을 들고 국악원으로 향했다. 몇 시간이랄 것도 없이 가야금을 배우고 집에 오는 게 나의 일과가 됐다. 이후 국악원에서 7년 동안 공부했다.

가장 먼저 배운 곡은 영산회상(靈山會相) 중 세영산(細靈山) 이다. 고려 시대에 석가모니가 설법하던 영산회상이라는 모임을 노래한 악곡에서 비롯돼 조선 시대 선비들에 의해 사랑방 풍류로 발전한 음악이다. 세영산은 그중에서도 굉장히 단순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이 가락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덤덤한 곡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연습하지 않을 때도, 집에 와서도 머릿속에서 항상 이 곡이 흘렀다. 가야금을 잡지 않았을 때에는 입으로 계속 흥얼거렸다.

김철옥 선생님에게 재미있게 배울 때와는 또 다른 희열을 맛본 것이다. 가야금의 완전히 다른 세계를 보게 됐고 가야금에 대한 흥미는 점점 커졌다. 김영윤 선생님은 이런 내게 더욱 애정을 가진 것 같았다. 매일 가르쳐 주는 것은 물론이고 일요일에는 우리 집에 와서 나를 가르칠 정도였다.

황병기<가야금 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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