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하듯 전쟁을 즐기다니…

중앙일보

입력

“전쟁이 벌어지면 아무래도 이웃 마을로 가는 길이 막혀버리겠지.”
느닷없이 시작된 이웃 마을과의 전쟁. 주인공 ‘나’는 전쟁을 알리는 공고를 보고 제일 먼저 출근을 걱정한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전쟁이 시작된 후로도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일상은 계속된다. 총성도 들리지 않고 소란스러운 일도 없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전쟁.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읍사무소로부터 정찰원으로 임명받고, 업무를 수행하며 보이지 않는 전쟁을 조금씩 느끼게 된다.

주인공이 마주하게 되는 전쟁의 단면들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전쟁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다.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이웃 마을과의 협의하에 결정된 전쟁 ‘사업’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시행되고, 휴일엔 쉰다. 담당 공무원들은 지나칠 정도로 사무적이고 행정적인 절차에 따라 사업을 수행한다. 가게에서는 전쟁기념 세일을 하고, 재단법인 인접마을전쟁공사에서는 전시 혼례 장려금을 지급한다. 오직 마을 홍보지 한 귀퉁이에 실린 전사자의 숫자만이 전시 상황의 비극을 조용히 알리고 있다. 이렇듯 비현실적으로 펼쳐지는 전쟁을 작가는 현실 세계에 정확히 대입시키며 우리가 취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꼬집고 비튼다.

“점점 복잡해지는 사회 속에서 전쟁은 절대적인 악도 아니고 미화된 형태도 아닌, 전혀 다른 모양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닐까? 실제의 전쟁은 예측할 수 없는 다양한 형태로 우리를 끌어들이고 그 속에 휘말리게 하는 것이 아닐까? 그 때도 우리는 과연 전쟁에 대해 “NO”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럴듯한 명분을 가지고 일상의 일부로 스며드는 전쟁에 우리가 적극적으로 반대할 수 있는지, 작가는 의문을 던진다. 참상이 눈에 보이지도 않고, 적극 가담할 필요도 없으며, 당장 내앞에 안락한 일상이 주어지는, 그런 전쟁에 말이다.

“우리가 전쟁에 반대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분기점은 이 ‘전쟁에 대한 끝없는 공포’를 자신의 것으로서 피부로 느끼고, 그것을 자기말로 이야기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있지 않을까.” 결국 모든 것은 보려고 하는 자에게만 보이는 법이다. 우리는 매일 똑같이 굴러가는 하루에 진저리를 치지만, 그 평범한 하루 건너편에 생존을 건 삶의 전투를 벌이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알려하지 않는다.

『이웃 마을 전쟁』은 2004년 일본에서 소설 스바루 신인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7개월 동안의 기묘한 전쟁에서 주인공이 겪는 일을 흥미롭게 따라간다. 일본에서는 이를 원작으로 한 영화가 개봉되기도 했다. 이야기는 쉽게 읽히지만 곳곳에 숨어있는 메시지는 책을 덮은 뒤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부디 전쟁의 소리를, 빛을, 기척을 느껴 보도록 하세요”라던 이웃 마을 전쟁 담당팀 고사이 씨의 음성이 머릿속을 맴돈다. 언제 시작되었는지, 언제 끝났는지도 모르는 채 지나가버린 전쟁이 주인공의 삶에 뚜렷한 흔적을 남긴 것처럼.

프리미엄 최은혜 기자 ehchoi@joongang.co.kr
자료제공=지니북스 / 02-3442-4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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