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아시아의고동>인도 5.산업기반 탄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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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이쑤시개에서 인공위성까지-.』 국가경제정책연구원(NCAER)의 수렌드라 라오 원장은 인도산업의 다양성을 이 한마디로 표현했다.가장 기초적인 소비재는 물론 초첨단제품까지 인도는 못만드는 것이 없다는 뜻이다.
농업생산이 전체 GDP의 30%를 웃돈다고 인도를 저개발 농업국가로 우습게 보면 큰 오산이다.아직도 강수량이 수확을 좌우해「비가 곧 정권」(Rain is reign)이라는 말이 나올정도지만 산업기반이 예상외로 견고하다.
우선 독립운동시절부터 내려온 자급자족의 전통이 뿌리깊어 생활에 필요한 소비재는 무엇이든 다 만든다.
물론 질(質)은 낮다.특급호텔 레스토랑에서 외국인들을 위해 내놓는 나이프는 스테이크를 썰기 힘들 정도로 무디다.스푼과 포크는 마치 군용(軍用)처럼 투박하다.화장지도 외국인들 사이에서는「샌드페이퍼」로 통한다.그런가하면 40년전 모델 그대로인 앰배서더 택시를 타면 엔진소음이 그야말로「굉음」이다.
그러나 일부 업종의 기술수준은 상당히 발달돼 있다.특히 산업부문의 고용 및 수출의 4분의1을 차지해 쿼터산업(quarter industry)이라고 불리는 섬유산업이 강세다.
국립패션기술원(NIFT)의 라제시 베다 의류제품과 학과장은『전반적인 패션감각과 기술축적도가 높아 학생들의 디자인을 그대로수출해도 될 정도』라며『싱가포르.홍콩등에서 활약중인 유명 디자이너중에는 NIFT출신 인도인이 많다』고 설명했 다.
가전(家電)도 마찬가지다.인도는 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에 맞춰 컬러TV방송을 시작했으나 정작 TV를 제대로 만들지 못해아시안게임기간중 수천대의 소니TV를 저관세로 긴급 수입했었다.
12년이 지난 지금은 BPL.오니다.비디오콘.베 스타비전등 컬러TV 메이커가 57개나 돼 과열경쟁이 우려될 정도다.
8월28일자 격주간 경제잡지「캐피털 마켓」의 특집기사를 보면인도 TV산업의 자부심을 읽을 수 있다.
『82년 소니를 켜놓고 육상영웅 우샤가 금메달을 놓치는 것을안타까워한 인도인들이 올해에는 수시미타 센이 미스 유니버스로 뽑히는 장면을,그것도 국산TV로 지켜보며 열광했다.』 기초과학과 첨단기술은 이보다 더 발달돼 있다.
[뉴델리=南潤昊특파원] 인도는 이미 핵(核)을 개발했고,인공위성을 쏘아올렸으며,제트엔진을 만들었다.잠수함의 경우 우리나라와 비슷한 시기에 독일로부터 기술을 배워왔으나 우리보다 훨씬 앞서 개발에 성공,실전배치를 마쳤다.또 미국 실리콘밸리의 엔지니어 가운데 3분의1은 인도인이다.그만큼 인도산업은 폭도 넓지만 깊이도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해외기술정보를 받아들이고 유통시키는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다.외국에서 전문정보지나 소프트웨어가 나오면 즉시 싼값의 해적판으로 복제돼 돌아다닌다.미국이 지적재산권문제로 통상압력을가하고 있지만 아직 큰 효과는 없는 편이다.
이때문에 인도시장에 뛰어든 외국기업들은 뜻밖의 강자(强者)인현지 기업들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게 된다.어떤 품목으로 들어가든 반드시 현지 업체들이 강력한 경쟁자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우리 기업인들 가운데는 독점으로 만들어 팔 품목이 없는가 알아보러 오는 경우가 아직도 적지않다.마드라스에서 만난 L씨는『서울과 동남아를 오가며 사업을 벌이다 인도에 독점판매할 물건이 있을 줄 알고 들렀다』고 말 했다.물론 L씨는 1주일만에 실상을 파악하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인도를 떠났다.
결국 외국기업이 인도에서 성공하려면 우선 현지업체들을 훨씬 능가하는 기술을 확실하게 지녀야 한다는 것이 인도 주재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현대종합상사 뉴델리지사의 이혁주(李赫柱)차장은『인도는 우리가 만드는 것은 무엇이든 다 만들고 있기 때문에확실한 기술경쟁력을 지니지 않으면 버티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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