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거기 그녀가 서있는걸 보았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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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솔직히 말씀드려서 아이들의 교내 문제만 가지고 씨름하기에도벅찬게 현실입니다.교외 생활지도라는건 말 뿐이지요.』아버지가 생활지도부의 꼴통 선생님에게 의논하러 갔을때 들은 이야기라고 했다.솔직히 말해서(이건 꼴통 선생의 말버릇이다)뽐 생님들도 학교 밖의 불량한 아이들에게 번번이 피해를 보고 있다면서 나중에는 이런 말까지 덧붙이더라고 했다.
『오죽하면 매년 졸업식 날마다 학교에 나오지 못하고 숨어 있는 선생님들이 있겠습니까.이게 현실입니다.』 『숨어 있다니요.
』 『선생에게 원한을 품은 아이들한테 몰매를 맞기도 한다 이겁니다.창피한 일이라서 당하고도 서로 쉬쉬 하고 있지만 이건 정말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지요.』 아버지는 경찰에서 무궁화 두개짜리 간부로 있는 친구분에게 찾아가서도 뾰족한 수가 없다는이야기밖에는 듣지 못하셨다.
『결론만 이야기한다면 그런 일은 그 아이 자신이 극복해야 깨끗해.야박하게 듣지는 말게나.우리가 그 깡패들을 잡아들인다고 해도 그 녀석들을 얼마나 교도소에 처박아 둘 수 있겠는지 생각해보게.들어갔다 나오면 원수를 갚는다고 자네 아들 아이를 더 괴롭힐 건 뻔한거 아닌가.그렇다고 우리 경찰력이라는게 어디 아이 하나를 경호해 줄 수 있는 처지두 아니구 말일세.』 어쨌든여름방학이 시작되기까지의 며칠동안 아버지와 외삼촌이 번갈아 가며 성식과 성미의 등하교 길을 지켜주었고,방학 동안에는 내내 속초의 외할머니댁에서 지내다 돌아왔다.
개학 첫날,이제는 거머리같은 녀석들도 지쳐서 떨어졌겠지 하고학교에 갔다가 드디어 일이 터져버렸다.아버지 역시 상황변화도 확인할 겸 한번쯤은 성식이 혼자 학교에 가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거였다.
하교길에 성식이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서 교문을 나서서 오분쯤이나 갔을 때였다.누가 등뒤에서 어깨를 탁 치는데 도끼였다.성식은 오싹 소름이 돋았다.
『오랜만이야.혈색 좋은데… 뭘 봐 이 자식들아.먼저들 가봐.
가서 숙제해야지.』 도끼의 양아치 행색을 보고 다른 아이들이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면서 먼저 가버렸다.그날은 성식에게 그야말로 끔찍한 날이었다.통수형과 서머즈와 도끼는 봉원동 뒤쪽의 야산으로 성식을 끌고가서 옷을 홀딱 벗기고는 무릎을 꿇게 했다.
써머즈 가 보고 있어서 팬티만은 입고 있겠다고 그랬다가 통수형이 발길질로 얼굴을 걷어차는 바람에 코피를 흘리고야 말았다.
『오늘은 등짝에 칼이 박히는 날이야.알지.』 성식은 고개를 끄떡끄떡하였다.그러지 않으면 언제 어디서 무엇이 날아들지 알 수 없었다.성식이 얼른 한마디를 토해냈다.
『내일까지는 해올게요.50만원이요.』 『이젠 이자도 붙여서 가지구 와야지 임마.딸라이자루 말이야.』 통수형의 말에 벌거숭이 성식이 얼른 대꾸했다.
『백만원이면 돼요…? 백만원이요.』 통수형과 도끼와 써머즈가낄낄거리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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