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피치] KBO의 눈치행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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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외국인 선수의 연봉 상한선을 둘러싸고 말이 많다. 프로야구선수협은 지난 6일 기자회견에서 "지키지도 않는 규정을 왜 존속시키느냐"고 따졌다. 주무부처인 문화관광부에는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라고 촉구했다. "돈을 더 주고 싶으면 상한선을 올릴 수 있도록 규약을 개정해 돈을 더 주면 되지 왜 20만달러로 묶어놓고 뒷돈을 주느냐"는 주장이다.

1998년 프로야구 전력 평준화와 볼거리 제공의 취지로 도입된 외국인선수 제도는 분명 긍정적인 몫을 했다. 그러나 도입 초기 무분별한 몸값 상승을 막기 위해 만든 20만달러 연봉 상한선이 6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어 문제다. 외국인선수 제도는 최하위팀이 지명 우선권을 갖는 드래프트제도에서 자유경쟁으로 바뀌었다. 또 영입할 수 있는 외국인선수의 수준도 마이너리그 선수에서 현역 메이저리거도 데려올 수 있게 높아졌다. 그런데 몸값 제한은 여전히 20만달러다.

국내 최고액 연봉 선수(정민태.현대)가 7억4천만원(약 62만달러)을 받는데 외국인선수는 그 3분의 1도 안 되는 20만달러를 넘을 수 없다는 것은 누가 봐도 난센스다. 이런 현실이니 좋은 선수를 데려오기 위해서는 규정을 어기고 뒷돈을 주지 않을 수 없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왜 20만달러 상한선을 고수하려 할까. 시원하게 상한선을 높이거나 없애 더 높은 수준의 선수를 정정당당하게 데려오면 될 것 아닌가. 이미 지난해 프로야구 윈터미팅(실무자회의) 때부터 외국인선수 연봉 상한선을 없애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도 말이다.

지난 7일 만난 KBO 관계자는 "문화부에서도 몸값 상한선을 없애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의했다. 그러나 상한선을 없앨 경우 재정적으로 넉넉지 못한 팀과 여유가 있는 팀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게 된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KBO가 외국인선수 연봉 상한선을 고수하고 있는 이유가 돈 없는 구단 가운데 하나인 두산 베어스와 두산그룹 회장 박용오(67)KBO 총재의 관계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OB베어스 전임 구단주였던 박용오 총재는 98년 9월 정대철 총재가 물러난 뒤부터 프로야구의 수장을 맡고 있다. KBO는 오는 4월 4일 기아와 두산의 개막전 장소도 흥행을 이유로 지난해 3위팀 기아의 홈구장 광주가 아닌 7위팀 두산의 홈구장 잠실로 바꿔 총재를 의식한 눈치보기 행정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이에 대해 두산 경창호 사장은 "미국에도 뉴욕 양키스처럼 부자 구단이 있고, 플로리다 말린스 같은 돈 없는 구단이 있다. 중요한 것은 전체의 이익이다. 총재가 두산 쪽에 치우친 것이 아니라 프로야구 전체를 대변하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KBO는 편법을 방관하지 말고 외국인선수 연봉 상한선을 현실화해야 한다. 그래야 원칙이 통한다. 만약 총재가 원칙의 발목을 잡고 있다면 그건 문제다. 또 KBO 실무자들이 총재의 눈치를 보고 '알아서 긴다면' 그건 더 큰 문제다.

이태일 야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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