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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35세, 원더걸스 좋은데… 병원 가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직장인 김모(35)씨는 얼마 전 ‘소시당’에 가입한 당원이다. 신생 지하 정당이 아니라 인기그룹 ‘소녀시대’를 사랑하는 모임이다. 당원들은 주로 20대에서 30대 중반의 남성들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면서 관련 뉴스를 알리거나 오프라인에서 정기적 모임을 갖기도 한다.

모 회사 마케팅 부서 과장인 정모(37)씨는 최근 취미가 바뀌었다. ‘원더걸스’의 노래 ‘텔미’패러디 동영상이 올라올 때마다 자신이 활동하고 있는 디지털카메라 커뮤니티에 올리는 것이다. 휴대폰 벨소리도 바꿨다. ‘테테테테텔미’라는 후렴구가 울릴 때면 팀원들에게 시선을 받곤 하지만 즐겁기만 하다. 정씨를 비롯한 ‘원더걸스’ 사수파들은 그녀들의 새로운 스케줄을 누구보다 빨리 알아내 정보를 공유한다.

최근 10대 소녀 그룹 ‘원더걸스’와 ’소녀시대’의 열풍이 30·40대 남성에까지 번지며 신드롬으로 발전하고 있다. 우스갯소리로 “신사임당 대신 ‘원더걸스’를 5만원권 지폐에 넣어달라”는 요구도 나올 정도다.

반면에 여성들에게는 이 소녀들이 새로운 ‘공공의 적’이 됐다. 주부 문모(30)씨는 “섹시한 20대 여성도 아니고 어린 소녀들을 보고 좋아하는 남편을 보니 질투가 나면서도 한편으론 한심해 보인다”고 말했다. 모 여대에 다니는 유모(25)씨도 “학교 축제에 원더걸스가 왔는데 거의 ‘남대(男大)’로 변해버렸다”며 “남자친구도 내가 옆에 있는데도 좋아서 어쩔 줄 모르더라”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어린 소녀 그룹에 대한 열광이 ‘롤리타 증후군’에서 기인한 현상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롤리타 증후군’이란 러시아 출신 작가 나보코프의 소설 ‘롤리타’에서 유래한 말로, 어린 소녀에 대한 중년 남자의 성적 집착 혹은 성도착 증세를 말한다. 사실 요즘 국내 대중문화를 살펴보면 예전에는 20대 섹시한 여성이 인기 가도를 달렸지만 최근에는 10대 어린 소녀들이 남성 팬들을 장악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 20대 여성은 “소녀 코드에 집착하는 요즘 남성들을 보면 징그럽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소녀 그룹 열풍을 단순히 성적 증후군으로만 단정짓기는 어렵다는 분석이다.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씨는 “롤리타 증후군은 성적 집착이 전제되는 이야기이지만 원더걸스나 소녀시대에 대해 열광하는 팬들은 그들을 성적으로만 대상화하지는 않는다”며 “차라리 새로운 캐릭터 코드에 대한 열광으로 보는 게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전사에 이어 청순함과 섹시함, 상큼 발랄한 캐릭터가 새로운 트렌드로 소비되고 있다는 것이다.

20ㆍ30대 남성들이 소녀 그룹에 열광하는 것에 대해 그는 “국민적 반향을 일으키는 것은 대중적 코드이지 ‘오타쿠(おたく )’같은 광적 집착과는 다르다”며 “소녀그룹이 복고풍의 컨셉트를 채택한 것도 40대에게 어필하는 데 한몫을 했다”고 말했다. 국민 여동생 문근영이 영화 ‘댄서의 순정’에서 복고적인 분위기로 연기해 나이 지긋한 아저씨들까지 좋아하게 된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는 “소녀 그룹 열풍을 변태로 몰기보다는 그저 ‘귀여운 애들 괜찮네’ 라고 생각하는 정도로 받아들이는 게 옳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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