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의 중남미 군사개입史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미국은 19세기말 쿠바점령을 시작으로 이제까지 「뒷마당」중남미의 약소국들을 마음대로 침공.점령했다.아이티에는 이미 지난 1915년부터 1934년까지 유럽세 불용을 선포한「먼로주의」에따라 해병대를 파병해 내정간섭을 한 전례가 있다 .
존 케네디대통령 시절인 61년 쿠바 망명자들이 미국의 지원으로 카스트로 정권전복을 위해 아바나를 침략했으나 실패했고 65~66년엔 내전에 돌입한 도미니카 공화국의 민주화 지원을 구실로 침공,유엔과 미주기구(OAS)의 조정으로 친미 잠정정권이 탄생했다.
보수주의 물결을 타고 「힘의 외교」를 펼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첫번째 임기인 83년 그레나다의 親쿠바 혁명군사위원회가모리스 비숍 총리를 살해하고 집권하자 6일뒤인 10월25일 육군 공정대와 해병대 1천9백명으로 침공을 개시, 6백여명의 소련.쿠바인을 포로로 붙잡았다.이는 월남전이래최대의 反蘇군사작전으로 꼽힌다.
이밖에 81년부터 비올레타 차모로(여)정권이 들어선 90년까지 니카라과의 좌익 산디니스타 정권에 대항하는 콘트라 반군 게릴라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며 정부전복을 사주했다.
운하건설을 위해 국가를 창설한 파나마의 경우 89년 12월20일 주권국에 대한 내정 불간섭 원칙을 무시한채 2만1천여 병력으로 파나마시티를 침공,90년1월3일 실권자 마누엘 안토니오노리에가 장군을 美플로리다로 압송했다.
파나마사태는 중미 각국에 「新식민주의 부활」이라는 우려와 함께 전세계의 비난이 끊이지 않았다.
이후 부시행정부는 손상된 이미지 치유와 反美분위기 무마를 위해 90년1월 댄 퀘일 부통령을 파나마.온두라스.자메이카.멕시코.베네수엘라등 에 파견,선무외교에 나서기도 했다.
〈奉華植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