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벼락마다 시가 꽃처럼 피어난 곳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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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미당의 생가와 문학관, 묘소가 놓여있는 선운리는 세 개의 마을로 이뤄진다. 안현·진마·신흥마을이다. 올 10월 현재 이 세 마을엔 139세대 265명이 살고 있다.

 다섯 달 전, 이 세 동네 주민 대표가 모여 앉았다. 당면한 안건, 아니 지상 과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격론 끝에 외친 구호는 다음과 같다. ‘미당마을을 우리 손으로 만들자!’
 의기투합한 주민들은 집집마다 갹출해 400만원을 만들고, 마을 가꾸기 사업 명목으로 고창군으로부터 4000만원을 지원받았다. 그 돈으로 주민들은 조형물을 세웠고, 고샅마다 국화를 심었다. 마을은 조금씩 ‘미당마을’로서의 꼴을 갖췄다. 미당 묘소가 자리한 안현마을은 이 참에 이름을 돋음별마을로 바꿔 버렸다.

 마침내 11월. 미당마을의 모습이 공개됐다. 가장 인상적인 건, 동네 담벼락에 옮겨 적은 미당의 시편들이다. 알려진 대로 선운리는 미당이 태어나 자라고 묻힌 곳이다. 미당의 외가도 미당 생가 바로 근처에 있다.
 미당은 동네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동네 사람들이 사는 모양을 한 편씩 시로 바꿔 놓았고, 그 시편들이 모여 미당의 6번째 시집 『질마재 신화』(1975)를 이루었다. 그러니까 주민들이 일군 미당마을은, 질마재 신화를 고스란히 재현한 시의 현장인 셈이다.

 『질마재 신화』에 실린 미당의 가편(佳篇) 중에 ‘해일’이 있다.

 “바닷물이 넘쳐서… 마당에 흥건히 고이는 날이 우리 외할머니네 집에는 있었습니다. 이런 날 나는 망둥이 새우 새끼를 거기서 찾노라고 이빨 속까지 너무나 기쁜 종달새 새끼 소리가 다 되어 앞발로 낄낄거리며 쫓아다녔습니다만 항시 나만 보면 옛날 이야기만 무진장하시던 외할머니는, 이때에는 웬일인지 한마디도 말을 않고 벌써 많이 늙은 얼굴이 엷은 노을빛처럼 불그레해져 바다 쪽만 멍하니 넘어다보고 서 있었습니다.”
 미당이 소년이었을 적엔 외가 마당까지 바닷물이 들어왔었나 보다. 외할머니는 그 바다에 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은 외할아버지를, 마당 안에 들어온 바닷물을 보며 떠올렸던 것이고. 지금은 정미소가 들어앉은 그 집 담벼락에 ‘해일’의 전문이 그림과 함께 실려있었다. 가위 미당의 마을다운 모습이었다.

이에스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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