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총영사관 사건 축소 의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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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병무청은 미국 대학의 재학증명서와 입학허가서를 위조해 입영 연기 또는 병역 기피를 한 17명을 병역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로스앤젤레스(LA) 주재 총영사관 직원이 개입한 사실이 밝혀져 올 3월 총영사관 측은 이 직원을 파면했다. 그러나 현지에선 사건 축소 의혹과 함께 외교통상부의 지휘.감독 책임까지 거론되고 있다.

병무청 관계자는 4일 "병역의무자가 유학이나 어학연수 명목으로 해외에 나갔다 미국 대학의 재학증명서와 입학허가서를 재외공관에 접수해 해외여행 기간을 연장하는 신종 병역비리 수법을 적발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위조 사실이 명백한 혐의자에 대해 병역을 부과하거나 국외여행 허가를 취소하고 고발 조치를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병무청에 따르면 이들 중 상당수는 미국에 체류하고 있으며 이른바 사회지도층의 자제 5~6명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관계자는 "이번 조사는 올 3월 서류 위조를 도와준 LA 현지 유학원 관계자의 제보로 착수됐다"며 "제보 자료에는 미국 대학 서류를 위조한 186명의 명단이 포함돼 있었지만 병무청 감사실이 정밀 조사한 결과 고발 대상은 17명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유학원 측에서 총영사관에 허위 서류를 보내면 총영사관 직원 J씨가 이를 묵인해 주고 병무청에 다시 보내는 신종 수법이었다. 이를 위해 유학원 측이 명의를 도용한 대학만 31개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학원에서 학력을 위조한 사람들은 1인당 1500~3500달러(약 130만~320만원)를 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현지에선 LA총영사관 측이 사건 축소를 시도했다는 의혹을 낳고 있다. E유학원의 한 관계자는 "이 사건 뒤 총영사관의 한 영사가 만나자고 해 만났더니 '사건이 더 이상 확대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고 밝혔다.

영사관 측이 7개월여 동안이나 사후 조치를 하지 않은 배경도 의문이다. 총영사관 내부에서 이번 사건과 관련해 책임을 물어 징계를 받은 영사는 한 명도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연루자 문제는 검찰 조사 결과에 따라 적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편 올 6월에는 중국 선양(瀋陽) 주재 총영사관의 비자 심사 업무를 담당하는 현지 채용 직원 8명이 비자 발급 비리에 연루돼 중국 공안에 체포되는 등 영사 관련 비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국책연구소의 한 간부는 "비리 취약 업무에 대해 상시 점검을 하고 보직을 순환시키는 예방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병무청, "다른 재외공관도 조사"=병무청이 검찰에 고발할 17명 가운데 몇몇은 위조 서류로 체류 기간을 연장한 뒤 현지에서 영주권을 따내 병역을 면제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169명은 검찰 고발에서 제외됐다. 이들은 ▶위조 서류로 해외 체류를 연장한 뒤 국내에 들어와 입영 또는 입영 대기 중이거나▶위조 서류만 만들고 실제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병무청은 다른 재외공관에도 유사 사례가 있는지 전면 조사를 벌이고 있다.

김민석 군사전문기자, 정용환 기자, LA지사=박상우.신승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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