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와 ‘완력정치’ 再시동 오자와 ‘완력정치’ 再시동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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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호 10면

일본 민주당의 오자와 이치로 대표는 1980년대 말 이래 일본 정치의 한복판에 서왔다. 그를 빼놓고 일본의 내정과 대외정책을 얘기할 수 없다. 그는 가이후 내각(89~91년) 때 자민당 간사장을 맡아 완력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최대파벌 다케시타파 회장대리는 힘의 원천이었다. 오자와는 91년 가이후가 중의원 해산을 내비치자 총리 자리에서 끌어내렸다. 후임 자민당 총재 선거를 앞두고는 미야자와 전 총리를 비롯한 세 파벌 영수를 개인사무실로 불러 정견을 들었다. 다케시타파의 일본 정치 지배와 ‘킹 메이커 오자와’를 상징한 면접이었다.

그는 국제공헌을 대외정책의 키워드로 삼았다. 91년 걸프전 당시 일본이 130억 달러의 전비를 내고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데 대한 반성이 그 계기. 이른바 ‘오자와 조사회’를 만들어 자위대의 유엔군 파견을 주창했다. 자위대가 유엔평화유지활동(PKO)에 참가해 바다를 건너게 된 터는 그가 닦았다. ‘보통국가 일본’을 들고나온 것이 그 언저리다. 국가의 자립, 유엔 중심주의, 국제공헌은 그 요체다.

오자와는 정계의 이단아·파괴자이기도 했다. 93년 자민당을 탈당해 비자민 연립정권(호소카와 내각) 발족의 주역을 맡았다. 그러면서도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막후 실력자로 일관했다. 55년 자민당이 결성된 이래 실권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이후 그는 신진당ㆍ자유당 당수를 거쳐 지난해 제1야당인 민주당 대표에 올랐다.

올 7월에는 민주당의 얼굴로 참의원 선거를 치러 압승을 거뒀다. 참의원을 처음으로
여소야대로 만들었다. 아베 전 총리가 물러난 것은 그 벽 때문이었다(일본의 법안은 중ㆍ참의원을 동시에 통과해야 성립된다). 아베는 해상자위대가 인도양에서 미군의 대테러전 급유활동을 지원하는 테러특별조치법(1일 기한 만료) 연장안에 반대하는 오자와를 설득하지도, 넘지도 못했다. 이 법의 연장은 우리로 치면 자이툰 부대의 이라크 주둔 연기다. 동맹국 미국과의 관계가 걸린 사안이다.

오자와의 반대 이유는 자위대 활동이 지론인 유엔 중심주의를 벗어났다는 것이다. 유엔 결의에 따른 것이 아니라 미국 주도 작전에 대한 지원이라는 논리다. 아베 후임 후쿠다 총리는 이 활동의 지속을 위해 새 법안을 냈지만 오자와는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일본 정부는 1일 급유활동 선박에 철수 명령을 내렸다. 그 다음날 후쿠다 총리는 오자와의 회담에서 민주당과의 대연정을 타진했다. 미·일 동맹의 표류를 저울질한 파격적 제안이다. 하지만 오자와는 거부했다. 새 법안은 해를 넘길 판이다. 중의원은 언제 해산될지 모른다. 안개 정국이다. 오자와의 시대는 계속되는가.

▶지난 주

30일 미 구축함 윌리엄스호, 소말리아 해역에서 해적에게 납치됐던 북한 선박 구출 작전
 
▶이번 주

4일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 중국·한국·일본 순방
5일 원자바오 중국 총리 모스크바 방문
6일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방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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