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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부정의혹으로 본 편입학 실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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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호 04면

2일 오후 8시쯤 서울시내 한 편입학원의 강의실 풍경. 강의실에 빈자리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최정동 기자]

#1 성남시 분당구에 사는 김민정(22·여·가명)씨는 2002년 K대 지방캠퍼스 건축공학과에 수시 전형으로 합격했다. 내신에 자신이 없어 안전 위주로 지원했다. 그해 수능에서 점수가 잘 나왔고, 비슷한 실력을 가진 친구들이 서울의 좋은 대학을 다니는 것을 보고 미련을 떨치지 못했다. 학교에 정을 붙일 수가 없었다.

좋은 학벌 따러 年 20만 명 몰리는 ‘제2의 수능’

김씨는 2학년을 마치자마자 휴학하고 편입 준비에 들어갔다. 1년간 서울의 편입전문학원을 다녔다. 고3처럼 새벽부터 학원을 나가 밤 늦도록 공부했다. 하지만 그해 고려대에 응시했다가 떨어졌다. 재수 끝에 올해 3월 고려대 건축공학과에 입학했다.

정창영 전 연세대 총장

#2 H대 생명과학부 4학년 박모(23)씨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 지방대 법대를 다녔다. 2년 동안 준비해 지난해 지금의 학교에 편입학했다. 박씨의 최종 목표는 의학전문대학원이다. 의학전문대학원 진학에 유리하다고 판단해 생명과학부를 택했다. 그는 지난해 편입하자마자 의학전문대학원 시험 준비에 매달리고 있다. 박씨는 “생명과학과 편입생 12명 중 9명이 의·치의학 대학원을 가려고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편입학에 지원한 학생은 올해 22만 명이 넘었다. 수능시험 응시생(60만 명)의 3분의 1이 넘는다. 이렇다 보니 ‘제2의 수능’으로 불린다.

입시에 떨어져 재수를 하느니 차라리 점수에 맞춰 대학에 들어간 뒤 더 나은 대학 편입에 승부를 거는 사람이 늘어난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 정모(22·여)씨는 고교 시절 학업성적이 반에서 3등 정도였다. 그러나 2003년 수능시험에서 평소만큼 점수를 얻지 못했다. 재수를 할까 고민하다가 점수에 맞춰 일단 G대에 진학했다.

“입학 후 어느 날 도서관에 갔더니 알 만한 복학생 선배들은 죄다 편입학 공부에 매달리더군요. 분위기가 이런데 어떻게 학교생활에 적응할 수 있었겠어요?”

정씨는 1학년을 마치자마자 편입 대열에 합류했다. 1년을 준비한 끝에 지난해 3월 서강대 공대에 합격했다.

고려대 한 편입생은 “요즘엔 재수보다 편입을 선호하는 것 같다”며 “재수를 하다가 잘 안 되면 편입을 생각할 정도”라고 전했다.

편입 열풍의 배경에는 한국 사회 특유의 학벌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좋은 대학을 나와야 취직이 잘되고 사회적 대우를 잘 받는다는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고려대에 편입한 방모(22)씨는 “한국 사회는 아직 학벌이 중요하지 않으냐”며 “그 환상이 깨어지지 않는 이상 편입 열풍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쟁률 매년 크게 늘어

교육부에 따르면 올해 4년제 대학 편입학 경쟁률은 7.3 대 1이다. 2005년 7 대 1, 지난해 7.8 대 1로 95년에 비해 크게 오른 것이다.

1996년 이전까지만 해도 전국 대학의 편입학 규모는 5000명 안팎이었다. 그해 모집 정원 제한이 풀리면서 정원이 늘기 시작했다. 편입생 규모는 98~99년 4만 명 선, 2001년 이후 3만 명 선을 유지해 왔다. 교육부가 2006년 1년에 두 번 뽑던 것을 한 번으로 줄이면서 편입생이 2만4900명으로 줄었다. 올해는 편입생이 3만 명 선으로 다시 올라갔다. 약 10년 만에 여섯 배가 불어난 것이다.

최근 3년간 편입학 시험에 지원한 학생수(편입 지원자)는 매년 20만 명 선을 유지하고 있다. 96년만해도 지원자가 7만 명 선이었으나 정원이 늘어나면서 지원자도 급증한 것이다.

서울지역 사립대 인기 높아

편입 시장에서 인기가 높은 학교는 서울의 사립대학이다. 서강대(31.2 대 1)·중앙대(24.6 대 1)·성균관대(23.2 대 1)·외국어대(21.5 대 1)가 높다. 연세대는 9.6 대 1, 고려대는 3.3 대 1이다.

경기도 K전문대를 나와 한양대 컴퓨터학과에 편입한 김정환(23·가명)씨는 “연세대는 전공시험이, 고려대는 영어시험이 어려워 처음부터 생각을 접는 편입 준비생들이 많다”며 “한편으론 두 대학을 가기 위해 재수나 삼수하는 학생들도 많다”고 전했다.

서울대는 경쟁률이 다소 낮은 편이다. 교육부가 국회 교육위원회 유기홍 의원(대통합민주신당)에게 제출한 ‘2007년도 1학기 편입생 모집 결과’ 자료에 따르면 올해 서울대에는 191명 모집에 691명이 응시해 119명이 합격했다. 경쟁률이 3.6 대 1이었다.

서울대가 낮은 이유는 학부를 졸업한 뒤 편입하는 학사 편입 제도만 운영하기 때문이다. 서울대 편입생 가운데는 서울대 출신이 36명, 학점은행제 출신을 포함해 다른 대학 출신이 83명이었다.

경영학과 연대 66 대 1, 고대 127 대 1

학생들이 편입 시장에 몰리는 이유는 극심한 취업난 때문이다. 편입학 입시 준비 전문인 김영학원 정우신 홍보팀장은 “편입생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해 보면 70%가 편입 이유로 취업을 꼽는다”며 “유명 대학 상대나 법대, 사범대 영어교육과는 경쟁률이 40~50 대 1 정도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올해 연세대 경영학과는 3명을 뽑는데 200명이 몰려 66.6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법학과는 64 대 1, 경제학과 41 대 1이었다. 고려대도 경영학과가 48.9 대 1로 가장 높았고 언론학부(48 대 1)·영문학과(44.5 대 1)가 뒤를 이었다. 고려대 경영학과는 지난해 127.6 대 1이라는 경이적 경쟁률을 보였다.

의학대학원 코스 생물·화학과 부상

최근엔 전문대학원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면서 편입학 판도가 달라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의·치의학 전문대학원 입학이 용이한 생물학이나 화학계열 인기가 올라간다.

지난해 고려대 일반 편입학에서 생명과학부가 71 대 1을 기록해 7위를 차지했다. 또 그해 서강대 화공생명공학과는 96.6 대 1(전체 평균 57.2 대 1)을 기록했다. 과거에는 이런 과가 편입학 시험에서 기피 대상이었다.

2009년 도입될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때문에 정치외교학·철학·국문학과 등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이명현 전 교육부 장관은 “법학적성시험(LEET)의 과목인 언어이해·추리논증은 사고력과 논리력·표현력을 요구하고 있다”며 “이 때문에 그동안 홀대 받던 인문학이 정상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방대 공동화 가속화

편입 열풍은 지방대에는 엄청난 타격이다. 학생을 뽑아놓으면 수도권 대학으로 가버리기 때문에 빈자리를 메우기 쉽지 않다.

경북 경주시 위덕대는 매년 890명 정도가 입학하는데 현재 재학생은 2700명밖에 안 된다. 이 학교 관계자는 “편입학으로 들어오는 학생보다 빠져나가는 학생이 많다”면서 “아무래도 학생들이 서울의 이름 있는 학교로 편입하려는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통합민주신당 이경숙 의원은 최근 교육부 국정감사에서 “현재의 편입학 제도는 지방대에서 서울 소재 대학으로 가는 발판으로만 거의 이용되고 있다”며 “이로 인해 지방대는 공동화 현상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방대가 빈자리를 메우려면 편입생을 많이 받아야 하지만 미달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올해 강릉대·군산대·부경대 등 3개 국공립 대학은 편입 시험에서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지방 사립대 37개 대학도 미달이었다.

수도권의 비인기 대학들도 학생들이 명문대학으로 빠져나가면서 애를 먹고 있다.

10여 개 대학에서 부정 발생

편입학 인기가 올라가면서 거의 매년 비리 사건이 터진다. 대부분 시험점수 조작이나 면접에서의 자의적 평가 등이 문제가 됐다.

9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10여 개 대학에서 부정이 발생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 K대 입학처장은 취임 직후 황당한 일을 겪었다. 낯선 사람이 찾아와 명함을 내밀며 “한 명 입학시키는 데 얼마면 되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는 “‘우리 학교를 어떻게 보느냐’고 호통을 쳐서 쫓아냈다”며 “내가 입학처장이 되자마자 찾아온 것으로 봐서 전문 브로커 같았다”고 말했다.

2004년 충남 중부대는 4억여 원을 받고 대구의 한약재상 24명을 부정 편입시켜준 사실이 드러났다. 이 대학은 학칙을 고쳐 편입 정원을 늘린 뒤 부정입학을 성사시켰다.

같은 해 초엔 고려대·성균관대·중앙대 등 서울 소재 11개 대학의 편입학 시험에서 무전기를 이용해 대규모 부정행위를 한 사례가 적발되기도 했다. 당시 부정행위로 대학에 합격한 사람은 125명이었다.

2006년 감사원의 사학재단 특감 때도 한 지방대가 편입학 요건에 미달되는데도 학교법인 임원의 자녀를 합격 처리한 사례가 적발됐다.

고려대 박유성 입학처장은 “선배 교수가 후배 교수에게 누구를 잘 봐달라고 청탁하면 거절하기 어려운 것 아니냐”며 “내년부터 면접시험을 폐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유기홍 의원은 “단 한 번의 입시가 일생을 좌우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편입학 제도 자체를 반대할 수는 없다”면서 “대학이 얼마나 제도를 투명하게 운영하느냐가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편입학= 원래는 군입대 등으로 생긴 결원을 충원하는 제도다. 총정원 5%, 개별 학과 정원의 10% 내에서 대학이 자율적으로 뽑을 수 있다. 전형 방법도 자율이다. 대학 2학년이나 전문대를 마친 뒤 4년제 대학 3학년으로 편입하는 ‘일반 편입’과 대학을 졸업한 뒤 다시 3학년으로 입학하는‘학사 편입’이 있다. 일반편입의 경쟁률이 훨씬 높다. 서울대는 학사 편입 제도만 운영한다.

학점은행제= 고졸 출신 등이 정규 대학에다니지 않고 시·도교육청이나 한국교육개발원에 등록해 학점을 따면 학사학위를 인정해주는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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