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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술’ 대 ‘이혼의 기술’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4호 15면

일러스트 강일구

“귀가 더러워지는 것 같아 더 듣고 싶지 않으니 그만들 좀 해줬으면 좋겠어.” 연예계 잉꼬 커플이라 일컬어지던 박철·옥소리 부부의 폭로전에 대해 수다를 떨던 친구는 언론이 주장하는 ‘알 권리’만큼 이젠 ‘모르고 싶을 권리’도 지켜줘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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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래” 하며 일견 동의를 하면서도, 내심 나는 권리 때문이 아니라 본능 때문에 더 알고 싶은 내 솔직한 심보를 생각하며 친구의 진심도 의심했다. 남들 애타는 비극에 할 말은 아니지만 이번 건은 동네방네 수다거리로 더할 나위 없이 ‘핫(hot)’하다. 바람난 예쁜 여자, 외국남자 애인, 또 숨은 예술가 애인, 자기 연민에 빠진 남편. 거기에 남들 집안 사정 중 제일로 궁금한 이불 속 비밀까지, 구체적 숫자로 공개할 만큼 양쪽이 전투의지를 불사르고 있으니 무엇이 더 터져나올지 모른다는 기대까지 겹쳐서 말이다.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서 내가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는 공주 같은 샬럿이 남편과 헤어지는 에피소드다. 집 안 인테리어 전문 잡지 ‘하우스 앤 가든’에서 샬럿의 집을 찍으러 오겠다고 결정한 날, 샬럿은 불행히도 남편과 별거를 시작하기로 한다.

다음 날 샬럿이 혼자 어색하게 촬영을 시작하려는 순간, 남편이 나타나 환히 웃으며 카메라 앞에 선다. 따로 살기로 한 남편은 “이건 당신이 소중하게 생각했던 일이잖아. 헤어지더라도 내가 이 정도는 해줘야지”라고 샬럿에게 속삭인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이렇게 우아하게 헤어지기란 정말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 나이쯤 되면 한 집 걸러 하나씩은 고려하고 있어 보이는 듯한 ‘이혼’이 대세라면, 이제는 정말 서로에게 상처를 덜 주며 우아하게 헤어지는 노하우에 대해 ‘사회적으로’ 고민해봐야 할 때다. ‘화성 남자와 금성 여자’가 만나서 행복하게 잘 사는 방법만 알려줄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각각 자기 행성으로 안전하게 돌아가는 노하우에 대한 책이라도 쏟아져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남자는 여자를 부정한 아내로, 여자는 남자를 무능하고 무책임한 남편으로 몰아가며 막장으로 치닫는 두 사람이 던진 문제는 당사자의 ‘이혼의 기술’ 문제뿐만이 아니다. 어차피 이혼이 대세일 정도로 시대가 변했다면 그걸 바라보는 ‘이혼 관전법의 기술’도 바뀌어야 하지 않나 싶다.

여자의 바람으로 이혼이 표면화됐다고 해서 내놓고 그 사람에게 증오를 표출하거나 심판하려는 사람들을 솔직히 나는 잘 이해할 수가 없다. 결혼이라는 것이 어느 날 유리창에 난데없이 돌멩이가 날아들어와 와장창 깨지는 그런 것이 아니지 않은가. 두 사람의 만남이 잘못된 만남이고 무너져 가는 가정이었다면 표면적인 이혼 사유란 그저 사소한 계기가 될 뿐이다. 바람의 잘못이 더 큰지, 사채나 불성실한 성관계의 잘못이 더 큰지는 두 사람이 재산문제를 놓고 따져야 할 문제다. 구경꾼으로서는 그저 한 가정이 무너지는 데에는 양쪽의 책임이 공히 있다 정도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누군가의 글에서 ‘가정 파탄의 책임이 있는 옥소리가 양육권을 가지는 부당한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구절을 보고 남의 사생활에 이렇게 준엄한 심판을 내리는 시선의 폭력이 참 어이없었다. 무슨 일에건 누구 하나 ‘죽일 X’을 만들어야 속이 시원한 이상한 증오의 에너지가 두렵기도 하다. 대중의 도덕적 심판과 분노는 이런 ‘민사’ 사건이 아니라 남의 돈 떼먹는 사기꾼, 주가 조작하는 사람들, 탈세하고 횡령하는 기업, 비도덕적인 ‘지도층’ 인사 같은 일에 에너지를 모아야 할 텐데 말이다.


이윤정씨는 일간지 문화부 기자를 거쳐 영화 제작자로 활약한 문화통으로 문화를 꼭꼭 씹어 쉬운글로 풀어내는 재주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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