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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까지 따뜻해지는 한 그릇의 수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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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호 28면

양파·당근을 비롯한 각종 야채와 버터…냉장고를 털어보면 쉽게 나올 만한 재료들로 가볍게 뚝딱 만들 수 있지만 영양가가 풍부한 수프는 현대인에게 가장 어울리는 음식이다.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따끈한 국물 음식이 당긴다. 깔끔한 멸치국물이 개운한 잔치국수, 쫄깃한 면발에 달큼한 가쓰오 국물이 일품인 우동, 아삭하게 씹히는 숙주와 향긋한 고수 잎을 잔뜩 넣어 먹는 쌀국수 등을 자꾸 먹게 된다. 그래도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다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8년 전 난생 처음 떠난 해외여행 길에서 터키에 머물렀을 때다. 언니들과 함께 터키 음식을 참 맛있게도 먹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단 한 가지 아쉬웠다면 따끈한 국물이 자꾸만 생각나는데 터키에서는 내 입맛에 딱 맞는 국물 요리를 찾을 수 없었다. 남들은 고추장이나 김치 생각이 난다던 그때, 나는 ○○○회사의 인스턴트 수프 생각이 간절했다. 찬물과 함께 냄비에 넣고 잘 풀어서 한소끔 끓여 먹던 부드럽고 따끈한 수프 말이다.
 
간단하지만 정성스러운 슬로 푸드
지금은 서양식 요리를 하다 보니 웬만한 수프는 뚝딱 끓여 먹을 수 있게 됐다. 재료도 간단하고 만드는 법도 대충 비슷하기 때문이다. 간단하지만 장시간 정성을 가득 들여 만드는 음식. 나는 수프를 슬로 푸드(slow food)라고 정의하고 싶다.

국도 여러 종류가 있듯 수프도 성격에 따라 크게 여섯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맑은 육수인 브로스(broth·고기와 채소를 끓여 맑은 국물만 따라 낸 것), 특별한 방법으로 기름기나 불순물이 전혀 없게 만드는 콩소메, 채소가 듬뿍 들어가 씹는 맛이 좋은 하티 브로스(hearty broth), 버터와 밀가루를 사용해 부드러운 크림 수프(cream soup), 콩이나 당근 또는 감자 등을 푹 익힌 후 곱게 갈아 만든 퓌레, 해산물에 토마토와 파프리카 가루를 첨가해 끓인 비스크(bisque). 여기까지가 고전적인 따뜻한 수프의 종류다. 그 외에는 차갑게 만들어 여름철 더위를 식히기 위해 먹는 새콤한 가스파치오나 과즙과 시럽에 과일을 담아 내는 디저트용 수프 등이 있다.
간단한 예를 든다면, 치킨 브로스는 채소와 함께 닭고기를 뼈째 푹 고아서 국물만 따라 낸 뒤 잘게 찢은 살코기를 얹어 먹는 것으로 서양인들이 감기 걸렸을 때 힘내려고 먹는다는 닭고기 수프가 이것이다.

콩소메는 프랑스 요리에서 기본적으로 언급되는 수프 종류다. 살코기만 곱게 간 쇠고기와 잘게 썬 토마토, 양파를 계란 흰자와 함께 섞은 후 약한 불에서 은근히 익힌 것으로 끓이는 내내 위에 뜨는 불순물을 제거해줘야 한다. 또 여러 차례 거즈 천에 걸러내는 등 투명한 국물만 취해야 하기 때문에 만들기가 정말 까다로운 수프다. 특이한 것은 계란 흰자를 넣는다는 점이다. 요즘에는 많이 사라졌다고 하는데, 와인 공정 중에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해 종종 계란 흰자를 넣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아무튼 콩소메는 왠지 말끔한 정장 차림으로 조심조심 떠서 예의를 차리면서 먹어야 할 것 같은 수프다.
 
건강식으로 좋은 퓌레 수프
샐러리·당근·양파·양송이버섯이 잔뜩 든 미네스트론(minestrone) 수프가 하티 브로스의 가장 쉬운 예다. 치킨스톡(닭을 끓여 우려낸 국물)에 갖은 채소를 듬뿍 넣어서 끓인 대중적인 수프로 싼 재료로 만족할 만한 포만감을 얻을 수 있는 음식이다. 채 썬 양파를 버터와 함께 장시간 은근한 불로 볶아서 천연의 단맛을 이끌어낸 후 치킨스톡 등을 넣고 끓여낸 양파수프도 하티 브로스의 대표적인 종류다. 특히 양파수프는 손잡이가 달린 수프 보울에 담은 뒤 두툼하게 썬 바게트 빵 한 조각을 띄우고 그 위에 치즈를 솔솔 뿌려 오븐에서 노릇하게 구워 먹으면 별미다. 잘 익혀 달달한 양파와 짭조름한 치즈의 맛을 상상할 때마다 나는 절로 입 안에 군침이 돈다.

밀가루를 물에 섞지 않고 뜨거운 냄비에서 버터와 함께 볶아 부드럽고 걸쭉하게 만든 것을 루(roux)라고 한다. 여기에 비타민이 많은 브로콜리를 곁들이면 브로콜리 크림 수프가 된다. 다이어트 등의 이유로 버터와 탄수화물 섭취를 꺼리는 사람이라면 좀 멀리해야 할 음식이지만, 어쨌든 몇 해 전 터키에서 그렇게 먹고 싶어 했던 수프가 바로 이 종류였고 나는 지금도 이걸 아주 좋아한다.

퓌레 수프는 건강식이 꾸준히 각광받고 있는 요즘에 가장 적합한 종류가 아닐까 싶다. 콩이나 감자같이 전분기가 많은 재료를 삶아 걸러서 걸쭉하게 만든 수프로, 개인적으로는 별도의 크림이나 버터 등을 첨가하지 않는 점이 참 마음에 든다. 크림 수프처럼 부드럽게 넘어가지 않는다는 게 좀 흠이라면 흠일까. 재료 자체의 맛을 즐기고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제격이다. 비스크는 새우나 랍스터 같은 갑각류의 껍데기를 팬에 볶은 후 토마토와 스페인 식 고추인 파프리카 가루로 매콤함을 가미해서 끓인 진한 수프로, 생크림을 더해 걸쭉하고 부드러운 맛을 내기도 한다. 그중 랍스터 비스크는 재료부터 고가여서 특별한 수프로 인식되고 있다.
모처럼 온 가족이 모인 주말에 맘에 드는 수프를 골라 정성껏 만들어 보는 게 어떨까? 낙엽 지는 가을에 스산해진 몸과 마음을 따뜻한 수프가 포근하게 다독여줄 수 있을 것이다.

양파 수프(onion soup)
재료 채 썬 양파 450g, 올리브유 20g, 치킨 브로스 1.1ℓ(마트에서 캔으로 구입), 월계수 잎 1장, 타임 2줄기, 소금, 후추
만들기
1. 양파는 올리브유를 두른 팬에 중불로 볶는다. 색이 갈색이 될 때까지 약 40~45분간 저으며 캐러멜화한다.
2. 1에 치킨 브로스를 넣고 20~25분간 은근히 끓인다. 소금·후추로 간을 맞춘다.
3. 양파 수프 그라탱을 먹고 싶다면 수프 보울에 양파 수프를 담고, 크루통(식빵을 주사위 모양으로 썰어 기름에 튀기거나 오븐으로 구운 것. 수프 위에 띄워 먹는다)을 넣고 그 위에 그뤼예르 치즈(gruyere·스위스산 황갈색의 하드 치즈)를 올리고 오븐에 넣어 치즈가 먹음직한 갈색이 돌 때까지 익혀 낸다.

새우 비스크(shrimp bisque)
재료 새우 껍질 300g, 포도씨유 57g, 잘게 썬 양파 80g, 다진 마늘 1쪽 분량, 토마토 페이스트 10g, 파프리카 가루 5㎖, 브랜디 20㎖, 중력분 밀가루 60g, 스톡 1ℓ, 새우살 240g, 생크림 260㎖, 소금, 후추
만들기
1. 새우 껍질을 잘 씻어낸 후 물기를 제거한다.
2. 팬에 버터를 넣고 1을 10~12분간 볶아 익힌다. 양파를 넣고 중불에서 새우가 더 밝은 색이 될 때까지 5~6분간 더 볶는다.
3. 토마토 페이스트, 파프리카 가루를 넣고 저으면서 다시 3~4분간 익힌다. 브랜디를 부은 뒤 브랜디가 다 휘발될 때까지 익힌다.
4. 밀가루를 넣고 6~8분간 저으면서 익힌다.
5. 스톡을 서서히 붓고 뭉침이 없게 풀어준다. 한소끔 끓인 후 은근한 불로 45분 정도 끓인 뒤 위에 뜨는 불순물을 제거한다.
6. 퓌레 상태로 걸쭉하고 부드럽게 만든 후, 체나 거즈 천을 통과시켜 곱게 거른다.
7. 소스 팬에 퓌레를 넣고 생크림과 새우를 섞어 3~4분 정도 끓여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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