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우유전쟁] 49. 세배 온 졸업생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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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2003년 1월 초 어느 날. 눈길을 무릅쓰고 반가운 손님들이 찾아왔다. 민족사관고 졸업생들이었다. 미국 유학생 한명과 한국과학기술원(KAIST)생 두명, 그리고 서울대생 한명 등 네명이 세배하러 온 것이었다. 모두 한복 차림이었다.

그들은 고생스러웠던 지난 날을 화제로 꺼냈다.

"우리는 두려웠습니다. 교육 전문가도 아닌 작은 기업의 경영자일 뿐인 교장 선생님이 세운 학교가 제대로 운영될까. 우리를 어디로 끌고 가려는 것일까. 교장 선생님이 끌고 가는 길의 방향이 잘못됐다면 우리는 거부하고 돌아서야 하는 게 아닌가 등."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이가 직설적으로 얘기했다. 그러자 국내파 아이들도 용기를 내 끼어들었다.

"선생님들도 자신이 없기는 우리보다 더했어요. 교장 선생님의 학교 운영 방식이 비교육적이라고 우리에게까지 말하는 분들도 있었어요. 특히 영어 상용(常用)은 하라니까 억지로 하는 것처럼 자신 없는 표정을 짓는 선생님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영어 상용에 자신감이 붙을 때서야 이 학교에 들어오기를 잘했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학생이 나섰다.

"학교 다닐 때는 그저 교장 선생님이 무섭다는 생각뿐이었어요. 길에서 인사를 잘 못하면 혼이 나니까 먼발치에서도 교장 선생님을 보면 정신을 차리고 몸가짐을 바로 했지만 속으로는 이런 형식적인 것이 왜 필요한가 하는 생각이 들어 승복하기 어려웠어요. 자유로운 정신을 기른다면서 고리타분한 형식에 얽매이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러나 학교를 졸업하고 금방 알았어요. 교장 선생님이 우리를 더 큰 부자유로부터 지켜주기 위해 얼마나 애쓰시는가를 말이에요."

나는 그들에게 물었다.

"이 학교에서 배운 것 중 가장 소중한 게 무엇이더냐."

미국에서 온 학생이 대답했다.

"제가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배운 것이 없다는 사실도 배웠습니다. 이 학교에서 저의 그릇을 철저하게 비운 다음 출발하지 않았더라면 대학에서 저는 남들이 이미 쌓아놓은 탑을 기어 올라가려고 애쓰다가 말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다른 사람들이 이룩한 학문적 성과의 끝자락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고, 그 길로 가려고 합니다. 그래야 한다는 걸 이 학교에서 배웠습니다. 듣고 외우고 풀고 했던 것은 모두 던져버렸습니다."

"장하다."

나는 감탄했다.

"마음을 비우고 늘 자유로워야 한다."

그러자 다른 학생이 내 얼굴을 유심히 보면서 말했다.

"교정에 있는 노벨상 좌대 위에 처음으로 우리 중 누군가의 흉상이 올라갈 때 교장 선생님이 세상에 안 계실 가능성이 더 클 것 같은데, 서운하지 않으세요."

"좌대는 나를 위해 만든 것이 아니다. 너희들이 앉고 너희들이 보라고 만든 것이다. 20년 후 너희들이 말해라. 그때 교장 선생님이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이었는지를."

최명재 파스퇴르유업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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