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對 反부시' 미국이 갈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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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미 정치권의 '50대 50' 현상이 심각하다. 공화당과 민주당에 대한 유권자의 지지가 정확히 절반씩 갈리고, 양당 간의 적대감이 극도로 고조되고 있다. 선거 때마다 경쟁 정당이 대립하는 건 당연하지만 미 언론은 "최근 상황은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라고 지적하고 있다.

현재로선 백악관과 상.하원을 장악하고, 자기당 소속 주지사와 대법원 판사가 더 많은 공화당이 우세하다. 하지만 공화당과 조지 W 부시 대통령에 대한 반감은 민주당을 결속시켜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장은 과거에 없던 '열기'를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올 연말 대선은 대법원 판결까지 갔던 2000년 대선 때보다도 더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고, 미국 사회는 심각한 분열을 경험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대립상=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이 시작되면서 일부 민주당원들은 ABB라고 쓰인 배지를 달고 다니고 있다. '부시가 아니면 누구라도 좋다'(Anybody But Bush)는 의미다. 민주당 존 케리(매사추세츠)상원의원이 민주당 후보 경선에서 선두를 달리는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좋아서'가 아니다. CNN과 갤럽 등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그나마 '부시 대통령을 깰 수 있을 것 같아서'라는 것이다.

주 의회에서의 대립도 심각하다. 지난해 말 텍사스주에서는 주 의회 민주당 의원들이 회기 도중 집단으로 다른 주로 도피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공화당이 기존 선거구가 인구비율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면서 재획정을 요구하자 민주당 의원들이 "10년마다 해야 하는 재조정 시기가 이미 지났다"면서 표결을 거부하려고 집단 이탈한 것이다.

최근에는 연방 상원에서 민주당이 부시 대통령이 지명한 판사들의 인준을 거부하자 공화당 의원들이 인준을 포기하고 새벽까지 돌아가면서 민주당 비난 연설만 계속하는 진풍경도 연출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외교 문제만큼은 초당적으로 대처한다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반세기의 전통도 깨져 버렸다"(리처드 홀브룩 전 유엔대사)는 지적이다.

◇서점가=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민주당 측은 공화당, 특히 부시 대통령을 비난하는 수십종의 책을 쏟아내고 있다. '부시는 미국을 어떻게 오도하고 있는가' '전쟁 왕' '부시의 거짓말-사기정치의 완성' '(부시는)지겹다'는 등의 책 제목에서 보듯 진보진영 쪽에서는 부시 대통령에 집중 포화를 퍼붓고 있다.

반면 보수진영은 '부시의 나라' '우리는 결국 승리할 것이다'는 등 자신들이 옳다는 주장을 담은 책들을 펴내고 있다. 그런 책들에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측은 2008년 힐러리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올 선거에서는 부시가 이기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는 역음모론도 슬쩍 끼어든다.

◇왜=2000년 선거에서 부시에게 대통령 자리를 도둑맞았다는 게 민주당의 기본 인식이다. 게다가 2002년 중간선거에선 공화당이 상.하원 모두에서 다수가 됐고 주지사까지 휩쓸었다. 유례없는 상황이다. 민주당이 올 대선에서 모든 걸 걸고 백악관을 되찾으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이 비난을 자초한 측면도 있다. 9.11 테러사태 이후 걸핏하면 '애국심'을 앞세우면서 반대파를 몰아붙이고, 뉴햄프셔와 사우스캐롤라이나 등 민주당이 경선을 치른 지역을 곧바로 방문해 민주당 지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등 속보이는 행동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눌려 지내던 민주당'은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없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폭발하는 양상이다.

◇전망=1억달러 이상을 정치자금으로 비축한 부시 대통령 캠프가 앞으로 본격적인 공격에 나서면 공화당과 민주당의 대결은 불을 뿜을 것으로 보인다. 양당의 전당대회를 전후한 7월 중순께부터다. 하지만 주간 이코노미스트지가 보도한 대로 미국 유권자는 민주당과 공화당이 각각 45% 정도를 장악하고 있어 결국 전쟁은 10%의 부동층을 상대로 하는 것이다.

워싱턴=김종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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