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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창건 당시 광화문 흔적 확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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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광화문 원위치 복원을 앞두고 옛 광화문 터 일대를 발굴 중인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김봉건)는 고종 때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세운 광화문 기초 밑에서 경복궁 창건(1395년·태조 4년) 당시 광화문의 흔적이 거의 완벽하게 남아있음을 확인했다고 1일 밝혔다.

 연구소 조사단은 “중건된 광화문은 임진왜란 이전까지 경복궁 정문으로 사용된 조선전기 광화문 기초(총 6단으로 구성) 위에 지어 올렸음을 이번 발굴에서 확인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경복궁 창건기 광화문의 위치와 규모는 막연히 고종 중건기의 그것과 비슷했을 것으로 추정돼왔다.

 조사 결과 광화문의 규모는 동서길이 34.8m, 남북최대잔존길이 14.5m로 나타났다. 태조 이성계 시대에 신왕조 정궁(正宮)으로서 경복궁을 창건하면서 광화문 건립에 앞서 지반이 허약한 뻘층과 모래층을 다지기 위해 30~50cm의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박은 지정말뚝(80-140㎝, 두께 10㎝ 내외)도 모습을 드러냈다. 그 위로 마치 시루떡을 쌓듯 황색점토와 잡석을 번갈아가며 6단으로 쌓아 올린 기초판축부가 조성됐다. 고종 때 중건된 광화문은 다시 그 위에 큰 석재와 흑색 사질토, 잡석으로 쌓아올렸다. 지정말뚝층은 지표로부터 1.6m, 태조 때의 기초판축부는 1.3m, 고종 때의 광화문 기초는 0.7m 아래에 각각 형성돼 있었다(사진).

경복궁은 조선전기 약 200년 동안 왕이 거주하는 왕궁으로 존재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버렸다. 흥선대원군이 1864년(고종 원년)중건하기 전까지 약 250년 동안 거의 폐허 상태로 방치됐다. 그사이 조선 왕궁의 역할은 창덕궁이 대신했다.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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