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227 - '…로부터'의 남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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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정치인이나 권력 주변 인사들이 줄줄이 검찰에 불려 가면서 언론에는 "○○○은 모 기업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얼마를 받았고, 모 단체로부터 얼마를 받았으며, 모 씨로부터도 얼마를 받았다"는 식의 뉴스가 자주 보도된다. 이런 사실을 듣기도 지겹지만 문장에서 이처럼 '-로부터'를 남용하는 것도 보기에 좋지 않다.

'-로부터'를 무의식적으로 많이 쓰는 것은 영어를 공부하면서 'from~'을 '-로부터'로 단순 번역하는 데 익숙한 탓이라고 보는 사람이 있다. '~로부터 ~까지'를 뜻하는 일본어 '~카라 ~마데(~から ~まで)'의 영향을 받았다는 견해도 있다.

어쨌든 '-에서' 또는 '(사람.동물)에게서' 등이 어울리는 자리에 '-로부터'를 남용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로부터'는 여러 가지 뜻으로 쓰이고 있긴 하나 "인생은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가" "바퀴 달린 탈것은 마차로부터 고속철도까지 발전해 왔다"처럼 유래나 구체적인 출발점을 나타낼 때 잘 어울린다.

"아버지로부터 재산을 물려받았다"라고도 할 수 있지만 사람인 경우 특히 "아버지에게서[한테서] 재산을 물려받았다"로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처음에 든 문장도 '모 기업으로부터'는 '모 기업에서','모 단체로부터'는 '모 단체에서', '모 씨로부터'는 '모 씨에게서'로 바꿔 "○○○은 모 기업에서 불법 정치자금 얼마를 받았고, 모 단체에서 얼마를 받았으며, 모 씨에게서도 얼마를 받았다"로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표현이다.

배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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