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택의펜화기행] 광화문 네거리의 '잊혀진 건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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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께의 기념비전, 종이에 먹펜, 36X50cm, 2007

서울 광화문 네거리 동북쪽 코너에 정자 모양을 한 잘 생긴 한옥이 있습니다. 자주 지나치면서도 ‘고종 즉위 40년 칭경기념비(高宗卽位四十年稱慶紀念碑)’를 보호하는 건물인줄 아시는 분이 적습니다.

 1902년에 세운 비석에는 고종황제가 즉위 40주년이 되었고, 나이 51세로 기로소(耆老所)에 이름을 올렸으며, 1897년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고치고 황제의 칭호를 사용한 것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소중한 비석을 보호하는 건물에 기념비전(紀念碑殿)이란 편액을 달았으나 기념비각(紀念碑閣)이라 낮추어 부르는 분이 많습니다. 건물의 품격을 차별하기 위하여 이름을 지을 때 ‘전·당·합·각·재·헌·루·정(殿·堂·閤·閣·齋·軒·樓·亭)’을 구분하여 씁니다. ‘비전(碑殿)’과 ‘비각(碑閣)’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본 펜화는 1910년께 일본인들이 만든 사진엽서를 이용한 것입니다. 엽서에는 기념비전 편액과 홍예문에 새긴 만세문이란 글을 지우고 인쇄를 하였습니다. 이처럼 칭경기념비 존재 자체가 싫은 일본인들이 기념비각이라 낮추어 부른 것입니다.

 

현재의 기념비전

기념비전은 6·25동란 때 일부 파손된 것을 1954년 보수하였으나 본래의 모습과 다른 부분이 많습니다. 궁궐의 용마루에 설치하는 백색 양성추녀마루가 기와로 바뀌면서 잡상이 없어졌고, 금속으로 만든 상륜부는 온 데 간 데 없는데 절병통도 디자인이 다릅니다. 담장이 없어지고 외문이 삼문으로 바뀌었습니다. 일본인이 옮겨서 자기 집 대문으로 이용하던 홍예문틀과 청동문을 되찾은 것은 다행입니다.

 기념비전을 그냥 지나치지 말고 짬을 내서 찬찬히 살펴보세요. 당대 최고 장인들의 뛰어난 솜씨를 보시면 안목이 높아집니다.

김영택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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