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GB 출신 푸틴, 스탈린 때 숙청자 추모식 참여 '참회냐, 정치쇼냐'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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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대한 참회인가, 총선용 행보인가. 옛소련 정보기관인 국가보안위원회(KGB) 출신인 블라디미르 푸틴(사진)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스탈린 시절 처형된 희생자들의 70주년 추모식에 참석해 눈길을 모으고 있다. AP.BBC 등의 외신은 "푸틴이 이 행사에 참석한 것은 2000년 집권 뒤 처음"이라고 전했다.

추모식은 모스크바 남쪽 부토바 지역 한 교회에서 열렸다. 스탈린 정권 중기인 1937~38년 KGB 전신인 비밀경찰 NKVD(내무인민위원회)가 예술가와 목회자 등 2만여 명을 총살한 곳이다.

추모식에서 푸틴 대통령은 "인간의 생명과 권리.자유 등을 무시한 공허한 사상 때문에 역사의 비극이 빚어졌다"며 "당시 너무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으며, 자신의 견해를 당당히 밝혔던 사람들이 주로 희생됐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한 비극"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재 이 나라가 직면한 문제들을 효과적으로 풀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라도 당시의 비극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12월 총선과 내년 3월에 열릴 대선을 앞두고 좀 더 차분해지자고 호소하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은 "정치적 논쟁과 의견 대립은 있을 수 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건설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인권운동가들은 푸틴의 이례적 행보가 '총선용'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이들은 "스탈린 시절에 행해진 탄압의 규모를 축소하고 그를 역사의 영웅으로 미화한 새 역사 교과서를 푸틴 대통령이 올해 승인했다"고 말했다. 또 "현재 진행되고 있는 권력 집중화는 러시아를 다시 공산주의 억압 시절로 되돌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세르게이 볼코프 정치탄압희생자연합회 회장도 "푸틴 대통령은 과거 정치 탄압의 희생자들을 위해 한 것이 별로 없다"며 "그는 한 발은 민주주의에, 다른 한 발은 아직도 KGB에 두고 있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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