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安風'진실 드러나나] 강삼재 "역사를 배신할 순 없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1995~96년에 벌어진 안풍(安風)사건이 완전히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6일 강삼재 전 신한국당 사무총장이 2심 공판에서 김영삼(YS)전 대통령이 사건의 중심 인물임을 고백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러자 재판부는 전격적으로 YS를 증인으로 채택했다.

뿐만 아니라 김기섭 전 안기부 운영차장은 자신이 조달한 '안기부 비자금'을 누구에게 전달했는지 곧 밝히겠다고 했다. 김기섭(안기부)→(?)→YS→강삼재(당)로 이어지는 자금 경로에서 그동안 안개 속에 있던 인물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이 사람은 YS 최측근 중 하나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동안 침묵을 고수해온 YS는 상당 기간 증인 출석을 거부할 것으로 보인다. 이럴 경우 재판부가 몇차례 증인 소환을 거듭하다 구인장을 발부할지도 주목된다. 재판부는 증인 출석을 여러차례 기피한 엄삼탁 전 안기부 기조실장에 대해 이날 구인장을 발부키로 결정했다.

만약 YS나 돈 전달자의 증언이 이뤄지면 재판은 처음부터 다시 하는 거나 마찬가지가 된다. YS나 돈 전달자의 사법 혐의가 어떻게 될지, 출처를 모르고 돈을 받았다면 姜전총장은 무죄가 될 수 있는지 등이 주목 대상이다.

앞으로 재판은 YS가 姜전총장에게 전달했다는 안풍자금의 정체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이 돈은 9백40억원이지만 95년 지방선거 때 김덕룡 당시 총장에게 지원한 것까지 합하면 안풍자금은 약 1천2백억원이다. 이날 이 돈이 '안기부 돈'이라고 주장하는 김기섭씨와 '외부 자금'이라고 맞선 姜전총장의 변호인 장기욱 전 의원 간에 설전이 벌어졌다.

金씨는 목소리를 높이며 "姜씨 변호인들이 '안풍자금은 YS 대선잔금'이라고 언론플레이를 하는데 이래도 되는 거냐"고 주장했다. 그는 "안풍자금은 불용액과 이자를 1년에 4백억원씩 3년간 모은 것"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張변호사가 날카로운 음성으로 "아니 재판장님, 김기섭 피고는 1심 재판 때부터 저렇게 말이 안되게…"라며 응전에 나서자 노영보 재판장이 싸움을 말렸다.

사건이 불거진 지 3년여 만에 YS에게서 돈을 받은 사실을 공개한 姜전총장은 그동안의 마음 행로를 털어놓았다. 그는 "3년간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다. 극단적인 표현같지만 (자살한)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이나 안상영 부산시장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단지 나 자신이 무죄 선고를 받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최근 부정 선거자금 사건에서 보듯) 국민이 정치권에 대해 갖고 있는 냉엄한 시선을 직시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姜전총장은 "정치적 신의와 개인적 의리도 중요하지만 역사와 국민을 배신할 수는 없었다"고 덧붙였다. 姜전총장은 지난달 16일 재판부에 "진실 공개 여부를 결정할 시간을 달라"고 한 뒤 부인과 딸을 데리고 지역구인 마산 근처에서 월말까지 머물며 심경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YS 측에선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고 한다.

김진 정치전문기자

<사진 설명 전문>
강삼재 한나라당 의원이 안기부 예산 전용 의혹 사건인 이른바 '안풍'사건 공판을 받기 위해 6일 서울 고등법원에 출두하고 있다.[연합]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