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대북 정책 목표, 개혁·개방에 둬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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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노무현 정권이 추진한 대북 정책의 문제점은 두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는 임기 내에 어떤 수단을 써서 최소한 이런 목표는 달성해 보겠다는 전략적 사고가 부족했다는 것이다. 그 대신 ‘북한이 원하는 것을 들어 주면 북한이 감동해 변화할 것’이라는 천진난만한 논리에 사로잡혔다. “6자회담에서 북한이 달라는 대로 주고 문제를 해결해도 남는 장사” “조건없는 물질적· 제도적 지원을 하겠다”는 노 대통령 발언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어떠했는가. 북한부터 노 정부의 선의(善意)에 감동하기는커녕 악의로 나왔다. “선군 정치가 남측의 안전을 보장하고 있으니 쌀을 지원하라”고 오만을 떨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내정 간섭, 미사일 발사에 이어 핵실험까지 하며 한국을 위협했다. 그러나 이 정권은 항의 한번 제대로 못 했다. ‘북한을 자극하면 남북관계가 파탄된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남남 갈등은 그 어느 때보다 심화됐다. 이는 대북 지원의 장애물로 작용하기도 했다. 남북 모두에 부정적 영향만 끼친 것이다.

다음 대통령은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북핵이나 납북자 문제 등에서 반드시 관철해야 할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북한에 각인시켜야 한다. 물론 1 대 1식의 완벽한 상호주의는 북한 실정상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남측의 요구를 북측이 거들떠보지 않는데도, 대화를 못 해 안달하는 모습을 더 이상 보여선 안 된다. 그래야 북한이 ‘남한 상전 노릇’을 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고, 진정한 의미에서의 협상도 가능해진다. 이를 위해 대화에만 목을 매게 돼 있는 통일부의 위상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둘째 문제는 북한 주민, 탈북자의 고통에 눈을 감았다는 점이다. 이 정권의 고질병인 ‘북한 자극 불가론’에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설득력이 전혀 없다. 이 정권 주장대로라면 그동안 전쟁이 여러 번 터졌어야 했으나, 실제로 그렇게 되지 않았다. 북한이 자신을 ‘악의 축’이라고까지 자극한 미국과 밀월 관계에 들어간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우리가 막대한 비용을 들여 북한을 지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분단 관리, 통일 비용 감소 등이 여기에 포함될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배경은 기아나 병고로 고통 받는 북녘의 동포를 돕는 인도주의에 있을 것이다. 특히 입만 열면 ‘민족’과 ‘인권’을 거론하는 노 정권이라면 더욱 그랬어야 했다. 그러나 이 정권은 북한 권력층만 쳐다봤지 신음하는 북한 주민들은 외면했다.

차기 대통령은 노 정권의 이런 전철을 다시 밟아선 안 된다. 무엇보다 대북 지원 방식의 근본 틀을 다시 짜야 한다. 단순 지원보다는 북한의 경제력을 어떻게 회복시킬 것인가다. 일회성 원조보다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줘야 한다. 그래야 북한 주민의 고통도 근원적으로 해소될 수 있다. 그러면 그 대안은 무엇일까. 그것은 북한이 개혁·개방으로 나가는 길밖에 없다. 이는 중국과 베트남이 이미 증명했다.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로 국제 자본이 북한에 유입된다 해도 현재의 폐쇄적, 1인 결정식 경제 체제로는 백약이 무효다.

따라서 다음 정권의 대북 정책의 목표는 북한의 개혁·개방 촉진에 두어야 한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태도에도 드러났듯이 북한 지도층의 거부감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포기해서는 안 된다. 개혁·개방이 북한 체제를 붕괴시키는 수단이 아님을 설득해야 한다. 같은 민족인 북한 주민의 고통을 완화하면서 남북이 21세기 국제사회의 냉혹한 현실에서 공영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라는 점을 주지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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