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Story] 추락하는 저축률 … 주식·부동산으로 자금 이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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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 제44회 저축의 날 기념식이 열렸지만 어느 해보다 초라했다. 2000년 426명이었던 저축 유공자는 올해 두 자릿수로 줄었다. 행사가 치러진 지 40여 년 만에 처음이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포상자를 찾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며 “저축을 잘 안 하는 요즘 사회 분위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때 세계 최고였던 한국인의 저축률이 이젠 세계 최고 속도로 낮아지고 있다. 부동산·주식 등 자산 가격이 급등하면서 ‘저축보다 투자’가 우선하는 쪽으로 사회 분위기가 바뀐 게 큰 이유다. “개미처럼 모아야 푼돈, 일단 쓰고 보자”는 소비 심리 확산도 한몫했다.

◆“포상자 찾기 힘들어”=한은은 이날 저축유공자 98명(3개 학교 포함)을 선정, 시상했다. 문제는 포상자 수가 매년 급격히 줄고 있다는 것. 2000년까지 500명 안팎이던 저축유공자 훈·포장과 표창 수상자는 지난해엔 100명을 겨우 맞추더니 올해는 두 자릿수로 줄었다.

한은 경제홍보팀의 김영만 과장은 “금융회사 등의 추천을 한은과 재정경제부가 심사한 뒤 포상자를 결정한다”며 “최근 들어 금융회사의 추천 자체가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1970년대엔 대통령이 직접 저축의 날 행사에 참석했지만 지난해엔 재경부 장관도 참석하지 않았다. 행사장도 지난해부터 세종문화회관에서 이보다 규모가 작은 은행회관 국제회의실로 바뀌었다.

◆저축률 하락 너무 빨라= 벌어들인 돈(세금·이자 등을 제외한 처분가능소득) 중 얼마나 저축했는지를 나타내는 개인 순저축률은 88년 23.9%로 최고치를 기록한 것을 비롯해 82년부터 줄곧 두 자릿수를 유지했다. 2000년 9.9%로 떨어진 순저축률은 지난해에 3.5%까지 곤두박질했다. 투자자산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소비수준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국인의 저축률 하락 속도가 세계에서 유례 없을 정도로 유독 빠르다는 것이다.

한은에 따르면 95년에 한국과 마찬가지로 16%대였던 대만의 저축률은 지난해 12.2%로 하락하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독일은 0.6%포인트 주는 데 그쳤다. 미국·영국의 경우 원래 저축률이 높지 않은 탓도 있지만 하락률이 우리만큼 크지는 않다.

◆이젠 소비가 미덕인가=70~80년대 고도성장기 땐 ‘저축이 미덕’이었다. 하지만 고도성장기가 막을 내리자 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즈가 30년대에 설파한대로 ‘소비가 미덕’이 됐다. 정부도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저축의 중요성을 외면하고 소비 확대에 매달렸다.

삼성경제연구소 장재철 수석연구원은 “경제에 활력을 더하기 위해선 소비가 필요하다”며 “하지만 선진국과 달리 자본 축적이 많이 이뤄지지 않은 우리의 경우 지나친 저축률 하락은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이 세계 최대의 채무국으로 전락한 데에는 2005년부터 마이너스 상태까지 떨어진 개인 저축률이 한몫했다. 저축의 날 행사에 참석한 이성태 한은 총재는 “최근 가계 저축률이 크게 낮아지고 있는 것은 우려할 만 일”이라며 “소득을 넘어선 과시적 소비는 국가 전체에 큰 부담을 초래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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