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선거 週期 재검토할 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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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어린 시절에 있었던 일이다. 어른들이 자리를 비운 친구네 집에서 정신없이 놀다가 갑자기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졌다. 둘 다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었지만 집에서 좀 떨어져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까지 가기는 서로 귀찮았다. 우리는 가위바위보를 해 한 사람에게 그 귀찮은 일을 떠맡기기로 결정했다. 가위바위보를 했고 내가 이겼다.

그러자 그 친구는 3전2선승제로 하자며 다시 가위바위보를 하자고 우겼다. 고집을 부렸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그 친구가 두 번 연속으로 이겼다. 이번에는 내가 우겼다, 5전3선승제가 돼야 한다고. 그래서 결국 그날 우리는 아이스크림을 먹지 못했다.

*** 선거 패배자, 곧바로 反轉 노려

방학을 이용해 잠시 외국에 나왔다. 국내 소식을 오랫동안 접하지 못해 궁금하던 차에 만난 한국 분께 국내 정치 소식을 물었더니, 언제나 똑같이 싸움질뿐이라고 하면서 차라리 모르는 게 속 편할 것이라고 한다. 일상적인 관찰자의 입장에서 벗어나 한걸음 떨어진 자리에서 바라보게 되는 한국 정치의 모습은 이처럼 많은 사람을 더욱 냉소적으로 만드는 것 같다.

한국 정치가 짜증스러운 까닭은 무엇보다 정치적 갈등이 해소되지 못하고 끊임없이 재생산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치적 갈등과 다툼을 해결하는 제도적 장치는 바로 선거다. 4년이든, 5년이든 정해진 기간마다 선거를 통해 정파적 갈등을 주기적으로 해결해 내는 것이다. 따라서 선거 때가 되면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정파 간의 경쟁과 갈등은 격화될 수밖에 없지만 승자의 임기 중에는 그러한 격렬한 정쟁을 피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외국과 달리 정치적 다툼이 끊이지 않고 계속된다. 2001년 후반기에 사실상 대선 레이스가 시작됐고 2002년 내내 선거 경쟁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지만 대통령 선거가 끝났어도 그것으로 정치적 갈등은 해소되지 않았다. 대선이라는 승부처에서 정파적 싸움은 결판이 나지 않았고, 패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행해지는 국회의원 선거에서 얼마든지 반전을 기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2001년 후반기부터 2004년 4월까지 무려 3년에 가까운 기간을 선거라는 격렬한 정치적 경쟁으로 소모하고 있는 셈이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2006년 후반기에는 2007년 말의 대선을 겨냥한 레이스가 사실상 시작될 것으로 본다면 총선 이후 2년여 후에는 또다시 선거 국면에 돌입하게 될 것이다. 만성적인 선거 경쟁이다.

권력의 향방이 걸려 있는 선거는 그 속성상 전부 아니면 전무의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각 정파는 모든 것을 걸고 맞부딪치는 것이다. 지금 보듯이 야당 대표들은 선거 결과에 자신들의 정치 생명을 걸었다고 공언하고 있고 대통령은 내각의 장관들까지 동원하며 총선 승리에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다. 이런 극한 대결 상황에서 여야 간 상생의 정치를 운운하는 건 너무도 한가한 이야기고, 또 이런 상황에서 국가 정책이 합리적으로 결정되고 추진되기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 대통령.국회의원 임기 맞췄으면

어린 시절 가위바위보로 결정하기로 해놓고도 아이스크림을 사먹지 못했던 까닭은 첫번째 가위바위보에서 졌더라도 다시 한번 해 보면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정치적으로도 한 번의 승부로 승자를 가리지 못하고 또 다른 판에서 패자에게 역전의 기회가 주어져 있는 한 정파 간 싸움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정치가 만성적인 싸움판이 돼 온 것도 대선과 총선이 일정 기간마다 번갈아 찾아오면서, 한 선거에서 패배한 정치 세력에 역전의 기회를 항시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제는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의 주기를 조정하는 일을 심각하게 사회적으로 고민해야 할 것 같다. 4년이든 5년이든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를 동일하게 하고 대선과 총선을 동시에 실시하거나 혹은 아주 인접한 시기에 실시하도록 일자를 조정할 수 있다면 지금까지 보아온 만성적인 극한 정쟁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스크림이야 안 사먹어도 그만이었겠지만 나라 살림이야 어디 그럴 수 있는 일인가.

강원택 숭실대 교수.정치외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