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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책읽기] 환경오염서 아기를 지켜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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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의 몸은 참 따뜻하다. 따뜻하다는 건 마음을 얼마나 평화롭게 하는지. 마흔에 낳은 내 팔뚝만 한 아기가 만 두 살이 되어 키가 내 허리에 오는 신비감, 포옥 안을 때 느끼는 일체감이란 건 세상을 다 품는 기분이다.

시시각각 변해서 신비하고, 바람이 불어 풀과 나무가 부드럽게 일렁이는 자연과 마주할 때의 기쁨도 마찬가지다. 이런 인생의 쾌감, 살아있는 이유를 공격하고, 두려움과 공포감을 주는 것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일상생활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얼마 전 내가 동네 만두가게에서 주인 아저씨가 만두를 꺼내려고 큰 솥뚜껑을 여시는데, 솥에 까는 깔판이 대나무나 철제품이 아닌 플라스틱이었다.

"아저씨, 죄송하지만 플라스틱이 뜨거운 열과 만나면 환경호르몬이 생기는데 …요즘 불임여성이 늘고, 기형아가 생기는 이유가 되기도 하는데… 자연제품을 쓰시면 손님도 좋을 텐데요."

이 얘기를 건네기까지 얼마나 망설였는지 모른다. 어떤 이는 그렇게 일일이 따지고 어떻게 사느냐고 한다. 생명이 달린 문제고, 고뇌없이 무심코 하는 습관이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 가게뿐만이 아니다. 온 도시의 음식가게마다 환경의식을 가진 주인이 얼마나 될까. 미용실.이발소에서 뭉텅 흘러나오는 합성세제 하며 목욕탕에서 어여쁜 여인들이 흘리는 보디 클렌저, 샴푸 린스 등의 합성세제들, 물과 공기의 오염, 포화상태의 쓰레기….

세계도 자신도 오염되어 있다. 우리가 살아있는 것만으로 죄인이 된다. 그렇다고 절박감도 죄의식도 없다.어찌 해야 할까. 차근차근 하나씩 문제를 풀어가는 수밖에 없다. 나부터 내가 처한 환경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거다. 나부터 폐식용유로 만든 비누로 살림을 하는 것, 전기 등 사소한 물자를 아끼는 것도 환경운동이다. 그래도 모자란다. 이럴 때 만난 책이 있다. '모성혁명'. 제목이 마음을 끈다. 문득 저마다 갖고 있는 부드러운 여성성을 회복할 때 세상사는 더 사람스러울 거라는 생각이 스쳐간다.

이 책은 다달이 태아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과 예비 엄마들이 한번쯤 궁금해하는 문제들에 대한 고민과 지혜로운 해결법을 풀어놓고 있다.

임신으로 변하는 자신의 자궁이 아기의 서식지가 된다는 것. 몸속으로 흘러온 공기, 음식, 물에 의해 이루어진 생명의 드라마를 연구한 것이다. 매일같이 무심코 먹고 마시는 물과 공기에 들어 있는 독성 화합물이 태아와 젖먹이 아기에게 얼마나 무서운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분명하고, 절박하게 알리고 있다.

"내 몸은 진주를 품은 굴처럼 아기를 단단히 감싸고 있다. 우리는 서서히 둘이 되어가고 있는 하나의 몸이다. 나는 아기가 생각하고 꿈꾸고 듣고 춤추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생태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이며 현재 코넬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는 그녀의 전문지식이 이런 시적인 문장과 어울려 빛난다. 이 영감 있는 글쓰기로 '제2의 레이첼 카슨'('침묵의 봄'의 저자)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글을 쓴 데에는 저자 산드라 스타인그래버가 서른여덟이란 고령의 산모였고, 자신의 유전자가 건강한지 모르는 입양아 출신이고, 20대에 방광암에 걸려 무수한 화학약품에 노출된 '암에서 살아남은 자'라는 '이력'이 크게 작용했다. 자신의 분신을 낳고 기른다는 건 항시 할 말이 많은 법이지만 그런 그녀의 삶이 '모성혁명'이란 걸출한 책을 절박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써냈지 않았나 싶다.

내가 고령 임신이 주는 기쁨과 두려움, 설렘 등 혼란스러운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입덧을 했을 때 이 책을 읽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먹이사슬의 최종 소비자인 태아나 젖먹이 아기들이 환경오염의 최대 피해자임을 안다면 이 책을 진지하게 보지 않을 수 없다. 임신부나 아기를 갖고자 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더 풍부하고 지혜롭게 풀어가도록 자극을 줄 것이다.

"세상이 오염되면 엄마가 오염되고, 엄마가 오염되면 아기가 병든다." 모성은 더 이상 자연의 선물이 아니다. 대화와 결단을 통해 모두가 지켜 나가야 할 커다란 과제다. 모든 것은 서로 이어져 있다. 하도 들어 뻔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환경문제. 내일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지금 나의 문제임을 먼저 생각해본다.

신현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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