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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 총기 난사 사건 ‘조작’ 의혹 제기에 軍 적극 반박 나서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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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호 12면

연천군 총기사건 유가족 대책위는 지난달 28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정부가 사건을 조작했다”고 주장하며 현장 사진을 증거로 제시하고 있다. [뉴시스]

“총기 난사 사건이 조작됐다는 의혹이 있다. 재조사할 의향이 있느냐.”(한나라당 송영선 의원)

“북한군 포격” 주장에 국방부 “김 일병이 범인 확실”

고 차유철 상병의 머리 X선 사진(위)과 지난해 미국에서 발생한 총기사건 피해자의 안면 X선 사진(아래). 두개골 윗부분과 안면 부위에 흰색 점으로 보이는 것(점선 안)은 탄두가 뼈에 부딪혀 깨진 파편이다. 유족 측은 “소총으로 이런 파편 흔적이 나올 수 없다”고 했지만 군은 반박 자료로 미국 사진을 제시했다.

“대법원에 계류 중이어서 법원에서 잘 판단하리라고 믿는다. 사건을 왜곡하고 조작했다는 것은 감히 있을 수 없다.”(김장수 국방부 장관)

지난 17일 국방부 국정감사장. 송영선 의원은 2005년 6월 19일 경기도 연천군 전방관측소에서 일어난 총기 난사 사건과 관련된 의혹을 제기했다.

‘연천군 총기 사건 유가족 대책위’는 “차단작전(북한군이나 불순분자가 비무장지대를 통해 월북하려 할 때 이동 경로를 추정해 차단하는 작전) 중 북한군의 대전차로켓포(RPG-7) 9발의 공격을 받아 8명의 군인이 사망했는데 국방부가 가짜 범인을 내세워
조작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군 도발이 있었다는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 향후 예정돼 있던 남북 장관급회담을 포함한 남북 관계에 큰 타격이 있을 것을 우려해 정부가 사건을 조작했다는 것이다. 사건 이틀 전 당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방북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면담했다.

중앙SUNDAY는 유족들이 제시한 자료와 증언을 토대로 취재에 들어갔다. 국방부는 “상심한 유족들의 심정을 헤아려 그동안 공개적으로 대응하지 않았지만 터무니없는 의혹을 명쾌하게 설명하겠다”고 밝혔다.

▶북한군 포격 있었나=유족들은 부대 상황일지에 ‘미상의 화기 9발 피격’이라고 기록돼 있는 것을 근거로 북한군에 의한 사건이라고 주장한다.

육군 중앙수사단 정세영 수사팀장은 “폭발음과 총성을 듣고 GP 상황실에서 나오던 이모 중위(후임 GP장)에게 김 일병이 연발 사격을 했다. 이 중위가 상황실로 긴급 대피한 뒤 대대 상황실에 알렸다. 폭음과 총성이 어떤 종류의 무기에 의한 것인지, 또 누구의 소행인지 확인이 불가능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미상의 화기 9발’이라고 긴급히 상황을 전파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최초의 상황 전파 문구를 유족 측이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족 측은 “최첨단 탐지 장비를 갖춘 전방 경계부대가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당시 차단작전이 있었고 복귀 과정에서 공격을 받았다는 소대원의 증언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기자는 증언을 듣기 위해 이 소대원에게 여러 차례 전화했으나 통화가 이뤄지지 않았다.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사건 당일 DMZ내에서 차단작전과 관련된 어떠한 군 작전도 없었다. 북한군이 9발 포격했다면 어떻게 다른 전방부대나 주한미군이 모를 수 있겠는가. 소설 같은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시신의 상처는 북한군에 의한 것인가=유족들은 “죽은 장병들의 상처는 K-1 소총이나 수류탄 파편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없는 것이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체력단력실에서 사망한 GP장 김종명 중위의 목 부분에 길게 난 상처(화상 동반)와 내무반에서 사망한 차유철 상병의 머리와 등 부분의 X선 필름상에 나타난 파편이 총상이라는 군 당국의 발표를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시신을 검안한 서울대 법의학교실 유성호 교수(당시 국방부 과학수사연구소 법의 군의관)는 “시신에 난 상처는 총상과 수류탄에 의한 상처로 판명 났다”고 밝혔다. 유 교수는 “유족들이 입회한 가운데 ‘탐침’으로 확인한 결과 5.56mm 보통탄에 의한 총상임을 확인했다. 차유철 상병의 몸 안에서 총알을 빼내 유족들에게 보여주기도 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탐침은 K-1 소총의 총알과 같은 구경(口徑)으로 만든 쇠막대기로 총알이 들어간 입구에 넣어 총상을 확인하는 장비다.

두개골에 작은 파편이 흩어져 있는 X선 사진에 관해 유 교수는 “두개골의 강도가 센 전두부(前頭部)에 탄두가 부딪히면 탄두가 부서지는데 ‘프래그멘테이션(fragmentation)’ 현상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김종명 중위의 목 상처와 관련해 유 교수는 “김 중위가 오른팔로 막는 순간 총알이 발사됐고, 팔을 관통한 총알이 목 부위를 스치듯 지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총알이 발사되는 순간 탄두는 240℃ 정도로 뜨겁기 때문에 상처에 화상이 생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 교수는 “당시 사실 여부를 확실히 하기 위해 부검할 것을 제의했으나 유족들이 ‘죽은 자식의 몸에 칼을 대 두 번 죽일 수는 없다’고 반대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그러나 유가족 대책위 조두하 대표는 “군이 진실 규명 의지가 있었다면 유족이 반대하더라도 부검을 했어야 하는데 의지가 없었던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당시 사인에 대해 이의가 없었고 부검을 반대한 유족들의 뜻을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수류탄 파편도 논란의 대상이다. 유족 측은 “쇠구슬 모양의 수류탄 파편이 발견돼야 하는데도 전혀 다른 모양의 파편이 발견됐다. 북한군의 대전차로켓포인 RPG-7의 파편으로 추정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국방부조사본부 과학수사연구소 임봉환 총기화재 과장은 “현장에서 발견된 사다리꼴·사각형의 파편은 현재 군이 사용하는 KG14 세열 수류탄의 파편이다. 과거 군이 사용하던 수류탄의 파편은 쇠구슬 파편이지만 현재 전방 GP에서는 이 수류탄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수류탄 제작 회사에 확인한 결과 쇠구슬이 들어 있는 K400 수류탄은 1990년대 들어서 사다리꼴 모양의 파편인 KG14 수류탄으로 바뀌었다.

▶사고 현장과 총탄·혈흔 등은 조작됐나=유족 측은 사망한 병사들의 시신을 내무반에 옮겨놓은 의혹이 있다고 주장한다. 시신을 옮긴 뒤 총격을 가해 아군의 총상으로 조작했고, 내무반·취사장·체력단력실 등에서 발견된 혈흔도 군이 조작한 것이라고 의혹을 제기한다.

임봉환 총기화재 과장은 “내무반 침상이 수류탄 폭발로 구멍이 뚫렸고, 천장에서 혈흔·파편흔이 발견됐으며 취사장과 체력단련실에서도 탄흔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당시 현장 감식에 참여한 임석택 조사관은 “취사장과 체력단련실에서 족적을 채취해 감정한 결과 사건 현장에서 사망한 간부와 병사의 족적으로 확인됐다”며 “족적 대조를 위해 신발을 벗긴 것을 두고 현장을 조작했다는 주장은 말도 안된다”고 밝혔다.

정세영 수사팀장은 “외부에서 차단작전을 하다 사망한 병사의 시신을 건물 내부로 옮겼다면 이동로에 혈흔이 여러 군데에서 발견됐을 텐데 그런 흔적이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사건 발생 후 구급차가 도착하기까지 불과 1시간30분 만에 시신을 옮겨와 재배치하고 총탄과 수류탄 흔적을 만들고, 살아 있는 수십 명의 부대원을 세뇌교육시킨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할리우드 특수효과팀이 와도 그렇게 조작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김 일병이 진범인가=유족 측은 “김동민 일병이 범행을 저지를 만한 뚜렷한 동기가 없고, 본인의 자백 외에는 물증이나 목격자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김 일병은 체포 직후부터 일관되게 본인의 범행이라고 시인하고 있다.

또 임봉환 총기화재 과장은 “감식 결과 김 일병의 오른쪽 손등과 손바닥 그리고 왼쪽 손등 등 모두 세 군데에서 뇌관화약이 검출됐다”고 말했다. 뇌관화약은 실탄의 뇌관에 들어있는 화약으로 총기 발사 시 극소량이 분출되면서 발사자의 손에서만 검출된다. 현장에서 수거한 탄피와 탄두를 감식한 결과 김 일병이 사용한 K-1 소총에서 발사된 흔적도 추가로 확인됐다.

서울대 의대 이정빈 교수는 “지난해 9월 유족들이 찾아와 검안 자료 등을 보이며 의견을 물었다. 군 검찰 측 자료, 유족 자료, 검안의로 참여한 유성호 교수의 자료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의혹의 여지는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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