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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 카페] “글로벌 시장서 함께 할 한국 변호사 많지 않아”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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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호 12면

‘알리슨 훅 국제사업부 대표’

국내 세미나 참석 알리슨 훅 영국 변협 이사

그가 내민 명함에는 한글 고딕체로 이름과 직함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를 만난 것은 22일 오후 밀레니엄 서울 힐튼호텔에서 열린 ‘세계화 시대에서의 한·영 변호사 간 협력’ 세미나 장이었다. 대한변협과 영국 변협이 공동 주최한 이 행사에 영국 측 대표로 참석한 훅 국제이사(변호사·사진)는 참석자들에게 명함을 건네며 반갑게 악수를 나눴다. 훅 이사가 한국을 찾은 것은 여덟 번째. 영국 변호사업계가 한국 법률시장에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있는지 보여준다. 한국과 유럽연합(EU)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진행 중인 가운데 열린 이번 세미나에는 특히 존 스튜터드 런던시장도 참석해 분위기를 띄웠다.

훅 이사와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법률시장 개방 전망부터 물었다. 국내 법조계는 시장이 개방되면 영국 로펌(법률회사)이 미국 로펌보다 더 적극적으로 진출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영국에는 한 해 매출이 한국 법률시장 규모(1조3000억원)보다 많은 클리퍼드 챈스(1조7000억원)와 같은 초대형 로펌이 즐비하다.

“제가 직접 협상 테이블에 앉지 않기 때문에 협상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가늠하기 어렵네요. 다만 우리는 한·미 FTA와 같은 수준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영국 로펌들이 한국 시장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데.

“기본적으로는 고객 기업들의 요구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한국 시장에 진출했거나 진출 중인 HSBC 같은 기업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그는 한국 법률시장이 개방되면 금융시장 개방과 맞물려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라고 했다. “영국 변호사업계도 20년 전 시장개방을 통해 일자리가 늘어나는 등 성장을 경험했다”는 것이다. 영국 변협 회원 13만 명 가운데 4만 명가량이 런던의 금융시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는.

“국제 해상법과 국제 금융 분야입니다. 한국의 조선과 화물운송 산업이 발전해 있어 해상법 전문 로펌들이 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또 국제 금융 시장에서 닦은 영국 로펌의 노하우가 한국이 ‘아시아 금융 허브’로 도약하는 데 도움을 줄 수가 있지요.”
훅 이사는 영국 로펌의 강점으로 “일찍부터 해외 법률시장에 진출해 국제거래에 전문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을 꼽았다. 영국계 로펌이라고 하지만 해외 사무소의 경우 절반 이상이 비(非)영국인 변호사로 채워져 있다고 덧붙였다.

“예를 들어 런던 금융시장에서 일본이나 스위스 자금을 조달하려고 할 때 한국 기업들에 특화된 법률자문을 해줄 수가 있습니다. 특히 선박처럼 소유관계가 복잡한 거래관계에 강하지요.”

이번엔 단점을 물었다. “법률서비스 비용이 비싸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비싼 만큼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자신감이 엿보였다.

-법률시장이 개방되면 몇 개의 로펌이 들어올 것으로 보는지.

“초기 몇 년간은 3~5개가, 중장기적으론 7~8개 정도가 진출할 것으로 봅니다. 물론 지금의 경제규모를 기준으로 한 것 입니다. 싱가포르에 15개, 일본에 12개 로펌이 나가 있어요.”

한국 변호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수준이 매우 높습니다. 영국 변협에서 6개월 코스의 해외 변호사 초청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한국 변호사가 유럽이나 남미 출신보다 월등히 높은 점수를 받고 있지요. 다만 변호사 수가 적은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굳이 해외로 눈을 돌릴 필요가 없지 않았나 싶어요.”

그는 국제 거래 분야에선 함께 일할 변호사가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영국 측이 세미나에 내놓은 주제가 ‘글로벌 시장에서 젊은 변호사들의 비즈니스 기회’였다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독일 얘기를 꺼냈다. 세계 2위의 법률시장 규모를 자랑하던 독일은 1997년 완전 개방 후 몇 년이 안 돼 10대 로펌 중 토종은 2개만 남고 모두 영미계 로펌에 흡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정색을 하고 “오해”라고 반박했다.

“독일은 전통적으로 지역에 기반을 둔 개인 변호사 중심의 시장 구조를 갖고 있었어요. 베를린·프랑크푸르트… 로펌이 도시별로 나뉘어 있었고, 전국을 커버하는 로펌이 없었습니다. 사실상 방치돼 있던 국제 거래 분야에 영국 로펌이 진출했던 것입니다. 진출해서도 영국과 독일 로펌이 동등한 파트너십(동업관계)을 형성하고 있지요. 변호사도 거의 다 현지 사람들로 채워져 있고요.”

한국 측 대표로 세미나를 진행한 대한변협 김범수 국제이사(변호사)는 “영국 로펌은 미국 로펌과 달리 아시아에 오랜 전통과 경험을 가진 데다 홍콩을 거점으로 한국 기업과 많은 거래를 해왔다”며 “영국 로펌의 진출 상황을 눈여겨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대형 로펌보다 중소형 로펌이 주요 타깃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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