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옛버릇 그대로...정신 못차린 경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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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모름지기 경찰의 수사에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경찰에 접수되는모든 사건에는 피의자와 피해자라는 두 이해당사자가 존재하게 마련인데 어느 한측의 진술만을 근거로 하거나 정황증거로 범죄사실을 추정한다면 언제까지나 경찰서는 인권의 사각지 대로 남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울경찰청의「10대 소녀폭력단」수사에서는 金모양(18.D여상1)등 9명의 피의자 진술은 깡그리 무시됐을 뿐만 아니라 정황증거로 범죄내용을 추정해 뻥튀기하는등 이같은 원칙이「철저히」무시됐다.뿐만 아니라 경찰은 이같은 문제점을 本報(27일字 23面보도)가 지적하자 자신들의 잘못을 되짚어 보기는 커녕「보도내용 해명」「보도진상통보」등 자료를 각언론사에 보내 궁색한 변명으로 일관하며 이를 정당화하기에 안간힘을 쏟고있다.그러나 이 해명자료는 경찰의 이번 수사가 정황에 따른 주먹구구 수사였음을 또한번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경찰이 이들 소녀들이「여자 구종점파」라는 폭력조직을 만들었다고한 근거는 이렇다.이번 사건의 참고인 유모군(17)이『구종점부근에서「구종점파」라는 조직을 결성하여 그 부근 일대에서 악명을 떨치고 있다』고 진술했다는 것이다.그러나 피 의자.피해자 13명의 진술 어디에서도「구종점파」라는 단어는 찾아볼 수 없을뿐만 아니라 경찰이 폭력서클조직으로 규정할만한 조직적인 행동도없다. 경찰이 혼숙의 근거로 내세운 근거도 빈약하기 그지없다.
피해자 金모양(16.무직)에게『남자 깡패와 여자 깡패는 어떤 사이인가요』라고 질문하자 金양이『자세히는 모르나 여자 깡패들과함께 투숙하는 줄 알고 있습니다』라는 단 한줄의 진술 내용을 내세우고 있다.그러나 피의자 金양등은 金양을 때리기 위해 낮에남자친구들과 한방에 모인게 전부라며 혼숙사실에 대해 하나같이 부인하고 있어 피해자의 막연한 주장만을 근거로 경찰이 소녀들의혼숙사실을 발표한 것이다.
아무리 실적 부풀리기에 급급한 경찰의 본성을 이해하려 해도 이 본성을 훨씬 뛰어넘는 경찰의 고질적 인권침해 수사관행은 문민시대 경찰의 현주소가 어디까지 와 있는 지를 극명하게 드러내보인 본보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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