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근의대선표심읽기] 지지율 상승이 단일화 막는 역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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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올 대선 구도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화두는 단연 단일화다. 피해 갈 수 없는 이 명제를 앞에 놓고 범여권 후보들은 지금 숨고르기 중이다.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는 경선 통과 후 당내 화합에 힘쓰며 자력으로 25% 이상의 지지율을 기대하고 있다. 창조한국당(가칭) 문국현 후보는 "후보 단일화에 관심 없으며 후보 사퇴는 절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 이인제 후보는 자신으로의 단일화를 주장하고 있다.

24일 중앙일보가 실시한 정기 여론조사에서 후보별 지지도는 이명박 55%, 정동영 16.2%, 문국현 6.7%, 이인제 3.3%였다. 1위와 2위, 2위와 3위, 3위와 4위 간의 격차가 모두 2배 이상이다. 범여권이 정 후보로 단일화될 경우를 상정한 4자 대결 구도에서도 이명박 52.6%, 정동영 25.5%, 권영길 5.6%, 심대평 1.4%로 1~4위 간에 각각 두 배 이상의 지지율 격차를 보였다. 2002년 10월 2위와 3위였던 노무현.정몽준 두 후보의 지지율 합이 1위인 이회창 후보를 능가했던 것과 크게 차이가 있다.

범여권 각 진영에선 이미 단일화를 둘러싼 주판알 튕기기와 함께 각종 시나리오가 등장하고 있다. 우선 지금처럼 여야 후보 간 지지율 격차가 크고 범여권 3위 이하 후보들의 지지율이 지지부진할 경우 단일화 없이 각개약진할 수 있다는 얘기가 돌고 있다. 대선 승리는 접어둔 채 내년 총선 지분을 염두에 둔 주장이다. 일부에선 2위 후보 지지율이 25% 이상이면 자신으로의 흡수 통합만 주장하며 다른 후보를 무시하는 전략을 펼 것이란 예상도 나오고 있다. 지지율 상승이 단일화에 방해가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BBK 사건의 주인공 김경준씨 송환이 11월 말로 예상되고 있는 것도 단일화의 걸림돌이다. 범여권 후보들은 이때쯤 자신의 지지율이 오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선거를 불과 20일 앞둔 시점에서조차 선뜻 양보하는 사람이 없을 가능성이 있다.

범여권은 여전히 한판 승부가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시너지 효과를 겨냥해 반드시 단일화해야 한다는 압력이 그만큼 강할 것이다. 2002년의 경우 단일화의 시너지 효과는 단일화 이전의 예상을 훨씬 능가했다. 당시 노무현 후보는 정몽준 후보 지지층을 거의 싹쓸이하다시피 흡수했다. 그리고 그 효과를 곧바로 본선 승리까지 이어갔다.

11월은 '범여권 단일화 논쟁의 달'이다. 올해 대선 구도가 다자 대결이냐 양자 대결이냐로 가는 갈림목이다. 단일화를 둘러싼 계산과 논쟁은 막판까지 계속될 것이다. 대선 이후의 내년 4월 총선 구도 역시 이 논쟁과 맞물려 있다.

안부근 여론조사전문기관 디오피니언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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