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문화까페] "너도 한번 맞아봐" 매 맞던 아내의 통쾌한 한 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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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강효진 등급: 15세
출연: 도지원 손현주 박상욱
장르: 액션 드라마

 보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감도가 확연히 달라질 영화다. 물론 허점도 많다. 가정폭력을 다루고 있으나 표피적이고, 현실성은 떨어진다. 잔혹한 리얼리티로 전업주부의 수난사를 그린 후, 여기에 약간의 코믹 코드로 그녀의 복수극을 덧붙인 영화다.

 그러나 가정폭력의 공포를 아는 사람, 또는 굳이 폭력까지는 아니어도 결혼 생활 자체가 주는 무력감을 경험한 이들이라면 전복과 발산의 쾌감이 훨씬 클 듯하다. 얼마나 성 정치학적으로 올바르며 현실적인가, 관객을 여성주의적으로 각성시키는가를 따져 묻는 것은 그리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영화는, 한 소심한 전업주부의 통쾌한 액션 복수극을 통해 중년 여성들의 억눌린 무력감을 발산시킨다. 여성관객들을 위한 판타지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다.

 주인공은 매 맞는 아내인 하은(도지원)이다. 남편 주창(박상욱)은 잘 나가는 이종격투기 선수. 경제적 능력도 없을뿐더러 중학생 딸에게 아빠 없는 설움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결심에, 갖은 폭력을 잘도 참아낸다. 주창이 하은의 옛 남자친구와 이종격투기 시합을 갖고 비열한 반칙으로 그를 죽게 하자 분노가 폭발한다. 사상 초유의 ‘부부 이종격투기’ 공개 도전장을 낸 것이다. 전직 학원강사인 수현(손현주)이 얼치기 트레이너로 나서 하은을 돕는다.

 폭력남편에게 폭력대결로 맞선다는 설정은 흥미로운 만큼 비현실적이고 위험해 보이기도 한다. 악랄한 주창 등 평면적인 캐릭터에, 13년간 폭력을 감수하던 하은이 독립선언을 하는 계기도 모호하다.

 그러나 영화는 가정폭력의 희생자였던 여성의 화끈한 복수전으로 카타르시스를 던진다. 남편 눈치 보기에 급급하고 “아줌마가 뭘 알아” 핀잔만 듣던 하은이 강한 여성으로 재탄생하는 장면은 후련한 대리만족을 준다.

 여성 액션 ‘조폭마누라’의 시나리오 작가였던 강효진의 감독 데뷔작이다. 감독은 “굳이 성 대결로 보지 말아 달라. 여자뿐 아니라 남자도 맞으면 아프다”고 말했지만, 충무로를 휩쓸고 있는 ‘강한 여자’ 신드롬에 기대는 영화임에는 분명하다. 물리적 폭력이 오가지 않아도 억압적일 수밖에 없는 결혼생활을 경험해봤느냐의 여부가, 이 영화의 판타지에 공감하느냐를 결정하는 기준이 될 듯하다. 특히 엔딩 시합 중 하은이, 휴대전화 CF속 젊은 여성이 긴 다리로 남성의 턱을 걷어차는 명장면을 엉겁결에 성공시키는 대목은 판타지의 정점이다.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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