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 칼럼] 에드먼드 버크의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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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김영희 기자 중앙일보 고문

보수주의 정치사상의 아버지 에드먼드 버크는 1774년에서 1780년까지 영국의 대표적인 무역항 브리스톨 출신 하원의원이었다. 그는 하원의 주요 법안 표결에서 선거구 주민들의 요구와는 정반대로 투표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아일랜드.프랑스.영국 식민지와의 통상을 자유화하는 법안이었다. 그 법의 시행으로 무역항 브리스톨은 경제적 기득권을 많이 잃었다. 그가 찬성한 채무자법이라는 것도 지불능력이 없는 채무자를 구제하는 내용으로 무역으로 치부하여 돈놀이하던 브리스톨의 채권자들에게는 불리한 것이었다.

*** 지역주민 뜻 거스른 英 정치인

1780년 총선 때 브리스톨 유권자들은 당연히 버크에게 등을 돌렸다. 버크는 브리스톨 시청에서 정치사에 길이 남을 명연설을 하고 후보를 사퇴했다. 그는 전국적(내셔널) 이해와 선거구(로컬)의 이해가 대립할 때 국회의원은 선거구의 이해를 초월해 국민적 확대된 시야로 '사물의 본질'을 보고 의정활동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정치의 수준을 지방의 이해에서 국가이익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근대적인 사고였고, 지방의 명망가 대신 직업적인 정치가를 의회에 보내자는 정치개혁의 요구이기도 했다. 그는 국회의원이 지역구에 얽매이면 국민대표제는 지방대표제로 전락한다고 경고했다.

우리는 한국.칠레 자유무역협정(FTA)의 국회 비준 좌절에서 농촌 출신 국회의원들이 선거구의 이익에 매달려 국가이익에 역행한 고전적인 사례를 목격했다. 그것은 결과적으로는 농민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도 아니다. 총선을 앞두고 표에만 집착하는 난동이었을 뿐이다.

식량의 자급도 못하는 칠레가 과연 농업강국인가는 다툼의 여지가 있지만 칠레가 농업강국이라고 하자. 그리고 한국.칠레 간 FTA 시행으로 농민들이 앞으로 10년 동안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계산으로 5백억원,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계산으로 3천억원, 한양대학 홍종호.문충걸 두 교수의 계산으로 6천억원의 피해를 본다고 하자. 정부는 2004년부터 7년에 걸쳐 1조원을 들여 농민이 볼 피해를 보상하겠다는 정책을 지난해 7월 발표했다. 국회 심의에서 1조원은 1조5천억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정부는 2004년에서 2013년까지 10년 동안 구조조정을 통한 농업 경쟁력의 강화, 직접적인 소득 지원, 교육.의료.복지 같은 농촌의 전반적인 삶의 질 향상에 앞에 든 1조5천억원을 포함한 1백19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세계무역의 절반 이상을 FTA를 체결한 나라들끼리 하고 있다. 그런데 국민총생산의 60%를 해외에서 벌어들여 무역으로 먹고 산다는 한국은 몽골과 함께 FTA를 하나도 체결하지 않은 나라로 뒤처졌다. 국회의원은 사물의 본질을 보라는 버크의 말은 어려운 철학적 명제가 아니다. 자유무역의 확대로 농민이 입을 피해와 공산품 수출의 확대로 한국 경제가 얻을 더 큰 이득을 비교하고 계산하는 개념적인 사고를 하라는 의미다.

국회의원에게 표를 의식하지 말라는 것은 비현실적인 주문이다. 다만 농촌 출신 의원들은 자유무역 확대의 국가경제적인 이해를 유권자들에게 설명하고, 정부의 농촌 지원정책 시행을 감시하는 방법으로 유권자의 지지를 확보할수 있고 또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국가경제와 농촌경제가 제로섬 게임의 관계가 아니라 윈윈 관계가 될수있다는 설명을 할줄 아는 국회의원이 되라는 것이다.

*** 농민들에 FTA 이점 설득해야

4당 지도부도 오는 9일에는 FTA를 꼭 비준하겠다는 각오다. 농대 교수들도 정치인과 농업인은 무조건 FTA를 반대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살길을 찾으라고 촉구했다. 선진국은 첨단기술까지 도입해 농업을 계속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중국의 농업은 먹구름처럼 질 대신 양으로 한국 농업을 위협한다. 한국 농업의 경쟁력, 이대로는 안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FTA 비준을 몸으로 막은 의원들이 비준에 앞장선다면 한국 정치는 한단계 업그레이드될 것이다. 한국 국회의원들에게 정치의 대선배 에드먼드 버크가 2백24년 전에 깊은 고뇌 끝에 내린 결단과 결론은 진지하게 음미할 교훈이라고 생각한다.

김영희 국제문제 大記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