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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 논란 대통령 가세 '3각 충돌' 번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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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한국법학교수회 이기수 회장(앞줄 왼쪽에서 셋째)이 24일 서울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열린 긴급 임시총회에서 교육인적자원부의 로스쿨 정원 1500명 안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의 성명서를 낭독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인천대 백원기, 단국대 석종현 교수, 이 회장, 한국외대 최완진, 제주대 양석완, 한국외대 이병준, 동국대 정용상, 서강대 이상수, 한남대 박태현.윤영철, 동국대 김선정 교수. [사진=김성룡 기자]

노무현 대통령은 24일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선정과 관련해 "지역 균형발전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이날 충남 태안군에서 열린 '기업도시' 기공식에 참석하기에 앞서 배포한 축사 원고에서 "균형발전은 가장 핵심적인 국가발전 전략"이라며 로스쿨 선정 기준을 언급한 것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로스쿨 선정 기준 1순위로 지역균형을 내세우면서 로스쿨 인가.선정을 둘러싼 논란이 치열해지고 있다.

현 정부가 임기 말에 로스쿨 문제를 지나치게 정치적인 잣대로 처리하려 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22일엔 청와대 천호선 대변인, 23일엔 성경륭 정책실장에 이어 이날 노 대통령까지 로스쿨 '지역 균형론'을 들고 나왔다.

특히 국회 교육위원회는 교육부가 26일 로스쿨 총입학정원 재보고 때 정원을 늘리지 않으면 보고를 거부하겠다는 입장이다. 연말 대선과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표밭을 의식해 총정원 늘리기에 가세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일부 대학은 "로스쿨 문제를 다음 정권에서 다루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 정부의 총정원안(2009년 1500명, 2013년 2000명)은 대학들의 기대(3200명 이상)에 못 미치는 데다 지역균형 변수로 선정 가능성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대학들도 강행.연기 이견=익명을 요구한 A대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인가 일정을 앞당기는 등 로스쿨을 매듭지으려 하지만 대학들은 이 문제를 차기 정부가 시간을 갖고 다루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법대 학장들과 일부 사립대에서 로스쿨 인가 신청을 거부해야 한다는 움직임엔 이런 배경이 있다"고 덧붙였다. 인가 신청은 다음달 말 마감될 예정이다. 대학들이 집단으로 신청을 거부하면 로스쿨 인가.선정은 현 정부가 처리하지 못할 수도 있다.

실제로 23일 청와대와 일부 지방 국립대 총장의 간담회에서는 "대학들이 보이콧하면 지역균형을 강조하는 정부가 로스쿨 문제를 마무리 짓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공유됐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

이화여대 김문현 법대 학장은 "원래 2월에 통과됐어야 할 로스쿨법이 반년이나 늦춰지면서 일정이 촉박한 실정"이라며 "로스쿨 '도입'은 현 정부의 공적으로 삼고 총정원, 지역 배정, 사법시험 존치 기간 등 세부적인 부분은 여론을 수렴하면서 다듬어야 한다"고 말했다. 강원대 최현섭 총장은 "지방에선 우수 인재 유출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는데 로스쿨의 지역 안배는 지역을 살리고, 국립대의 역할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결정 과정이 길어지면 갈등만 커지게 돼 현 정부에서 매듭짓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지역균형이 우선 잣대?"=노 대통령 발언과 관련해 로스쿨 인가를 심의하는 법학교육위원회 측은 언급을 자제하면서도 곤혹스러워했다. 한 관계자는 "로스쿨법 시행령 제5조 등에는 '지역 간 균형을 고려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지만 '반영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고 말했다. 지역균형 조항은 정부가 제정한 시행령에만 있을 뿐 국회를 통과한 본 법에는 없다.

건국대 법대 김영철 학장은 "지역할당이 특정 대학의 독과점 체제를 용인하지 않고 균형발전을 추구한다는 측면에서 찬성하지만 현재 대학을 이간질하고 분열시키려는 의도로 지역할당 문제를 자꾸 거론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중앙대 법대 신우철 교수도 "로스쿨 인가 심사에서 지방대에 일정 정도 가산점을 부여할 수는 있어도 이를 권역별로 나눠 할당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경쟁력 있는 법조인 양성이라는 로스쿨법 도입 취지에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26일 국회 보고 파행 우려=한나라당과 대통합민주신당 의원들은 교육부가 정원을 늘리지 않으면 법률안을 개정하겠다고 압박하고 있다. 신당 이경숙 제6정조위원장은 "정부 안대로 정원을 1500명으로 하면 현행 변호사 선발 수준을 유지하는 데 불과하다"며 "2000명에서 시작해 2500명까지 늘려 나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이한구 정책위의장도 "미래 법률 수요를 충족하고 선진국 수준의 인권 보호 기반을 갖추겠다는 취지와 다르다"고 비판했다. 반면 청와대 천호선 대변인은 "현재 정원 규모가 적절하다는 설득 작업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교육부 이걸우 대학혁신추진단장은 "입장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강홍준.고정애.배노필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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