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도와주던 시민 2명 死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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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경찰이 밀수사범을 단속하면서 민간인 4명을 동원했다가 화재로 한명이 숨지고 한명이 중태에 빠졌다. 이에 따라 경찰이 수사 과정에 불법으로 민간인을 동원해 희생을 초래했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4일 오후 6시5분쯤 경기도 구리시 사노동 서울 외곽순환고속도로 구리 방면에서 경찰청 외사과 金모(49)경사와 朴모(34.골프용품 판매상).吳모(33.무직)씨 등 민간인 4명이 밀수품 운반차량으로 믿고 추적하던 컨테이너 차량을 세웠다. 金경사가 차량 뒤편 적재함 문을 열자 朴씨 등 2명이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갔다. 이어 朴씨 등이 라이터를 켜고 내부를 살피던 중 갑자기 불이 나 朴씨가 숨지고 吳씨가 전신3도의 화상을 입었다.

컨테이너 차량은 이날 중국에서 수입한 붕어를 평택항에서 실어 창고로 옮긴 뒤여서 비어 있었으며 밀수품으로 의심할 만한 물건은 없었다.

경찰은 붕어를 옮길 때 주입했던 산소가 컨테이너에 남아 있다가 라이터를 켜는 순간 불이 붙은 것으로 보고 정확한 화인을 조사 중이다.

金경사는 "朴씨와 吳씨 등은 가끔 만나 소주를 마신 사이"라면서 "금괴나 마약을 밀수하고 있다는 신빙성 있는 제보를 받고 출동하면서 밤샘 근무로 졸음운전을 할 것 같아 朴씨에게 운전을 부탁했는데 (吳씨 등이) 함께 나왔다"고 주장했다.

중태에 빠진 吳씨의 후배 李모(31.회사원)씨는 이에 대해 "경찰이 밀수 단속과 같은 위험한 수사를 하면서 훈련도 받지 않은 민간인을 동원할 수 있느냐"며 "특히 吳씨는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친 6급 지체장애인인데 어떻게 데려갔는지 모르겠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에 대해 경찰청은 "金경사는 제보를 받고 출동할 당시 같은 과 형사들이 모두 업무에 바빠 친분이 있던 민간인 후배에게 동행을 요청한 것으로 진술했다"며 "직권을 남용해 물의를 빚은 金경사에 대해 감찰 조사가 끝나는 대로 파면.해임.정직 등 중징계를 내릴 방침"이라고 밝혔다.

김병화 외사3과장은 "사건은 많고 인력은 모자라는 상황에서 金경사가 공명심 내지 정의감으로 벌인 일"이라며 "하지만 민간인을 수사에 동원한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구리=전익진.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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