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뜨거운 마음 '쿨'한 생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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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세상사를 살펴보면 간혹 이상한 걸, 하는 생각이 드는 대목과 마주치게 된다. 고려시대의 대문장가인 이규보가 쓴 '대장경 각판군신기고문(大藏經 刻板君臣祈告文)'도 그런 경우다. 거기에는 "제불성현 삼십삼천은 간곡하게 비는 것을 양찰하셔서 신통한 힘을 빌어 주어 완악한 오랑캐로 하여금 멀리 도망하여 다시는 우리 국토를 밟는 일이 없게 하여, …"라고 쓰여 있다. 몽골의 침입으로 큰 난리를 겪은 조정에서는 부처의 힘을 빌려 나라를 지키기 위해 대장경을 새겼는데, 이 글은 대사를 앞두고 임금과 신하가 함께 모여 고사를 지내는 자리에서 낭독된 글이다. 나라와 백성을 지켜달라고 부처님께 비는 것은 과연 그럴 법한 일이다. 하지만 막 외적이 쳐들어 오는 난리통에는 화살이라도 한 개 더 만들고 군량미라도 한 됫박 더 마련하는 것이 인지상정일 텐데, 팔만대장경을 새기는 '한 박자 늦는' 사업을 떠들썩하게 벌이는 것은 차라리 한가한(?)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이 같은 조상님들의 마음이 이상하지만은 않게 여겨진 것은 오래된 일이 아니다. 정화수를 떠놓고 백일기도를 드리는 늙은 어머니의 마음이 그럴 법하게 여겨졌다든지, 천지간에 한번 떠올린 생각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든지 하던 무렵부터의 일이었을까. 조상님들은 특히 고려시대 말엽 이래 점차 옹색해져 마침내 풍전등화와 같은 상태에 빠지기도 했던 나라와 백성의 운명을 오직 '뜨거운' 마음 하나로 참으로 눈물겹게 지켜오신 것이다. 뜨거운 마음. 핏빛을 연상시키는 단심(丹心)과도 통하는 마음. 이것은 비단 먼 조상님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일제강점기, 해방공간, 한국전쟁, 4.19, 5.16을 지나오신 부모님들은 물론이요, 유신시대.광주항쟁을 지나온 우리들 역시 뜨거운 세월을 뜨거운 마음으로 살아오기는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과연 우리는 '뜨거운' 것을 좋아한다. 우리들을 지켜준 것이 이것이었으니까. 우리 가족을 지켜준 것, 우리나라를 지켜준 것도 바로 이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요즘 들어 슬며시 이런 생각도 든다. 설령 그것밖에는 대안이 없었다고 해도, 그렇게 해서 뜨거운 것을 움켜쥐었기 때문에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간 것은 없었을까. 불이 번쩍하는 뜨거운 마음 때문에 순간적으로 눈앞이 하얘져 버린, 그래서 도리어 시야에서 놓쳐버린 것은 없었을까. 갑작스럽게 뜨거운 것을 놓아버린 사람들, 갑자기 뜨거운 소용돌이로부터 놓여난 사람들이 자꾸만 보여주곤 하던 끝모를 허무주의나 니힐한 마음자락 같은 것도 이것과 관련된 것이었을지 모른다.

요즘 들어 깜짝 부상하는 이른바 쿨(cool)에 대한 취향은 이에 대한 반작용 심리와 무관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한증을 하고 난 사람들이 '차가운' 음료수를 마시는 심리와도 유사할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쿨에 대한 취향 역시 예의 뜨거운 마음으로부터 여전히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나 자신 역시 심하게 이끌리는 이즈음의 쿨이란 심장께의 깊숙한 곳에는 여전히 뜨거움을 간직하고 있으면서 손발로만 마치 냉증에라도 걸린 듯이 차가움을 표방하는 스타일리즘 비슷한 자리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다.

입춘을 맞아 기지개를 켜는 마음 속 벌레들의 준동(蠢動) 때문일까. 요즈음의 나는 마치 알리바바가 찾아낸 보물단지라도 들어 있다는 듯이 자꾸만 마음 속 깊은 곳을 들여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맨 얼굴의 현실이란 하품이 날 정도로 뜨뜻미지근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에만 만날 수 있을 터. 과연 내 안의 다른 한편에서 예의 뜨거움을 맞춤하니 식혀줄 '눈밝고, 귀밝은' 차가움을 찾아낼 수 있을까. 왠지 그런 생각도 든다. 이제는 더 이상 '뜨거운' 것만으로는 우리를 지켜낼 수 없을 정도로 세상은 지금도 계속해서 거꾸로 거꾸로 수없이 물구나무서기를 계속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강영희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