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록·두만강을 중국 강이라고 표기하는 한심한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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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정한 압록강과 두만강의 공식 영문 표기는 ‘Amnokgang’‘Dumangang’이다. 하지만 정부 산하기관들은 이를 무시한 채 중국식 표기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관광부 국립국어원은 압록강과 두만강의 영문표기를 각각 ‘Amnokgang’‘Dumangang’으로 정한 바 있다. 하지만 한국 관련 외신 뉴스의 오류를 바로잡는 업무를 담당하는 정부기관인 국정홍보처 해외홍보원은 압록강과 두만강의 올바른 영문표기를 해외에 알리기는커녕 중국식 표기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국정홍보처 해외홍보원이 운영하는 ‘Korea.net’ 사이트에서는 압록강을 ‘Yalu’, 두만강을 ‘Tumen’이라고 표기한 기사를 올렸다. 정부가 한반도의 대표적인 산과 강에 중국 쪽 호칭으로 영문 표기하는 문제에 대해 해외홍보원의 한 관계자는 “국력의 차이 때문 아니겠느냐”며 반문하면서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해외홍보원에서 인터넷을 담당하는 관계자는 “외부에서 작성된 기사들을 홈페이지에 올리는 과정에서 제대로 검토하지 못한 것 같다”면서 “정부가 정확한 표현을 써야 하는데 그 부분까지는 미처 신경 쓰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 5개국 정부간 다자 협의체인 두만강지역개발계획(TRADP)에서도 두만강은 ‘Duman’이 아닌 중국 쪽 호칭(圖們江)의 중국어 표기인 ‘Tumen’을 채택하고 있다. 재정경제부가 두만강지역개발계획 사무처에 파견한 공무원도 두만강의 중국 쪽 호칭인 ‘투먼장’(圖們江)과 이를 중국어로 표기한 ‘Tumen’이라고 적힌 명함을 사용하고 있었다. 한국의 국익을 대변해야 할 정부 관리가 두만강의 중국식 호칭이 적힌 명함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두만강유역개발계획 사무처에 파견된 공무원이 기자에게 준 명함. ''두만강''이 아닌 ''도문강''으로 적혀 있다(네모).

명함 뒷면. 두만강(Duman)이 아닌 중국 쪽 호칭인 ''Tumen''으로 적혀 있다.

재정경제부의 한 관계자는 두만강지역개발계획의 경우 경제적 관점에서 추진했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경제적 관점에서 접근했다. 인문학 차원의 접근은 없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심지어 ‘Tumen’이 두만강의 올바른 영문표기라고 알고 있었다. 이 관계자는 정부가 정한 표기법이 아니라고 하자 “두만강의 올바른 영문표기가 어떻게 되느냐”며 기자에게 되물을 정도로 올바른 영문표기에 대해 인식이 부족했다.

2005년 7월 제8차 두만강유역개발계획 5개국위원회는 두만강 사업을 10년간 연장하기로 하면서 사업의 명칭을 ‘GTI’(Greater Tumen Initiative)로 변경하기로 합의했다. 여기에서도 두만강의 표기는 두만강의 중국 쪽 호칭을 영문으로 표기한 ‘Tumen’으로 되어 있다. ‘GTI 협정안’은 회원국들이 검토한 후에 확정되게 된다. 제9차 5개국 위원회는 다음달 15일부터 이틀간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열릴 예정이며 정부는 재경부 제2차관을 수석대표로 하고 외교부와 통일부 관계자로 구성된 대표단을 회의에 참석시킬 예정이다.

정부 기관에서 앞장서서 중국 측이 쓰는 이름과 표기를 사용할 경우 자칫 한반도의 대표적인 강인 압록강과 두만강마저 중국령(領), 중국의 강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동북아역사재단 배성준 박사는 “남북이 백두산과 압록강, 두만강의 영문표기 통일안에 대한 합의를 하루 속히 이끌어내야한다”면서 “통일안이 마련되는 대로 국제사회의 관례에 따라 함께 표기해줄 것을 요구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한다”고 지적했다. 배 박사는 “이에 앞서 백두산과 압록강, 두만강에 대해 정부가 정한 영문표기를 내부적으로 준수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용범 기자

▶세계지도에서 '압록강' '두만강'은 중국의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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