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Story] “VVIP 모시자” 보디가드 고용해 요트 파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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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일 오후 5시 서울 한강변 선상 레스토랑 앞. BMW에서 정장 차림의 남녀가 내렸다. 이들은 입구에 있는 보디가드의 안내를 받으며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섰다. 이어 도착한 또 다른 고급차에선 모녀로 보이는 두 여성이 내렸다. 이들도 역시 초청장을 내민 뒤 3층 레스토랑을 향했다. 20여 분간 17쌍(34명)이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갔다. 영화 속 고급 사교모임 현장이 아니다. 하나은행이 초우량고객(VVIP)들을 위해 마련한 요트 행사다. 현장을 동행취재했다.

 ◆이젠 VVIP 시대=외부인의 출입은 엄격히 통제됐다. 레스토랑 입구에선 고객을 일일이 확인했다. 이날 하나은행이 34명의 고객을 맞기 위해 동원한 인력은 20여 명. 안전을 위해 보디가드까지 고용했다. 레스토랑과 요트 회사 관계자까지 포함하면 40명이 넘었다. 고객의 명찰엔 이름만 적혀 있었다. 회사 이름이나 직책은 없었다. 개인의 신상정보가 알려지는 것을 꺼리는 고객을 위한 은행 측의 배려다. 40~70대의 고객들은 중소기업체 대표, 병원장, 전직 고위공무원, 상장사 임원 등이 주를 이뤘다.

 서비스는 최고급 호텔 수준. 현악 5중주와 남성 8중창단의 곡 연주 속에 꿩 경단과 바다가재 요리 등이 포함된 12만원 상당의 식사가 제공됐다. 요트는 4억~5억원짜리 소형이지만 침실과 응접실 등이 따로 마련돼 있었다. 채용병 고객은 “특별 대접을 받는 것 같아 기분 좋다”며 “이번 행사를 계기로 요트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하나은행이 이날 34명의 고객을 위해 지출한 돈은 약 2000만원. 1인당 60만원가량 든 셈이다. 요트 시승은 요트 회사 측이 무료 협찬을 했는데도 이 정도다. 은행이 VVIP 마케팅을 할 때 외제차나 고급 의류업체가 경품 제공 방식으로 무료 협찬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들의 영업 대상이 은행 VVIP와 겹치기 때문이다.

 김상윤 하나은행 웰스매니지먼트 본부장은 “VVIP 고객은 차별화된 대접을 받으려 한다”며 “당장 마케팅 효과를 얻으려는 것보다는 장기적인 차원에서 서비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나은행이 관리하는 VVIP는 모두 300명. 이들의 금융자산은 1조2000억원으로 1인당 평균 40억원을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은행 측은 “VVIP 고객 한 명이 5000만원짜리 금융자산을 보유한 고객 100명과 비슷한 효과를 낸다”고 말했다.

 ◆진화하는 서비스=2~3년 전만 해도 은행의 VIP 서비스는 사은품 제공이나 음악·발레 등 국내외 공연물에 대한 초청이 주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특정 고객만을 위한 실내악 연주나 요트 시승, 소믈리에를 초청한 와인 강좌, 프로암 골프 대회 등으로 ‘진화’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이달 11일 VVIP 50명을 대상으로 한강변 선상 레스토랑에서 외국인 소믈리에를 초청해 저녁 식사를 함께 하는 와인강좌를 열었다. 이에 앞서 고객의 결혼 적령기 자녀 20명을 초청해 상류층 예절, 전통차 마시는 법에 대한 강좌를 열기도 했다. 국민은행도 올 4월부터 이달까지 모두 다섯 차례에 600여 명의 고객을 초청해 프로암 대회를 열고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은행 수익을 생각하면 행사를 안 할 수 없다”며 “(비판적인 시각을 의식해) 가급적 외부로 드러나지 않게 행사를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창규 기자

◆VVIP=‘Very Very Important Person’의 약자. VIP보다 한 단계 위인 초우량 고객(또는 최상위 고객)을 뜻한다. 금융회사별로 다르지만 대개 금융자산만 최소 10억원 이상이어야 VVIP로 분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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