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남북 장관급회담에 바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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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차 남북 장관급 회담이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 필자는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 4차까지 장관급 회담의 남측 수석대표를 역임했다. 당시 새로 출발하는 장관급 회담을 냉전시기와 달리 항구적이고 발전적인 당국 간의 공식 대화기구로 만들기 위해 밤잠을 설치면서 북측 대표들을 설득한 것이 머리에 떠오르곤 한다. 그래서 장관급 회담에 대한 관심과 기대는 남다르다.

*** 북측, 이산가족 문제에 더 성의를

정상회담 이후 남북 양측의 열의와 노력으로 화해협력은 지속돼 왔다. 그러나 2002년 북핵 문제의 대두로 남북관계 발전에 장애와 한계가 노출됐다. 북핵 문제의 여파로 북.미관계가 악화하고 경수로 사업이 중단됐다. 남측은 내부적으로 남남갈등이 고조돼 화해협력 정책에 대한 폄하의 목소리가 나오고, 북측 또한 외부와의 고립 심화로 경제난 극복에 어려움을 더하고 있다. 비록 2차 6자회담 개최 일정이 잡히기는 했으나 전반적으로 어려운 환경에서 열린 장관급 회담에 참여하는 양측 대표들의 어깨는 무거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수석대표를 역임한 필자로서는 이번 회담에 부담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몇 가지 기대를 걸어보고 싶다.

첫째, 지금의 상황에서는 남북 간 새로운 사업을 벌이는 것보다 이미 합의해 추진 중인 협력사업들이 차질없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 문제점은 무엇인지를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 개선.보완할 점이 있으면 양측이 협의.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둘째, 정상회담 이후 여덟 차례의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으로 8천51명이 상봉했다. 총 1만8천9백39명이 생사.주소를 확인했고, 6백79명이 서신을 교환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이산가족이 생사 확인과 상봉을 절박하게 기다리고 있다. 금강산 면회소 설치가 합의돼 착실히 진행되고 있지만 완공만 기다리지 말고 계속 생사 확인과 상봉이 이뤄질 수 있도록 북측은 열성을 보여 주어야 한다.

셋째, 남북 화해협력의 활성화와 긴장완화가 평화통일의 지름길임을 이미 남북 정상들이 이해를 같이하지 않았는가. 걸림돌이 된 북핵 문제의 해결에 대해 남측 국민은 지난 2년 동안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 왔지 않았는가. 우리 정부와 국민은 미국으로부터 "한국이 반미.친북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라는 우려의 소리를 들으면서도 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 발전의 모멘텀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말없는 메시지를 매일 매일 북측에 보내고 있음을 알기 바란다. 이 메시지는 '김정일 위원장의 현명한 선택'이다.

중국의 중재와 한국의 적극적인 역할에 의해 지난해 8월 베이징(北京)에서 1차 6자회담이 개최됐다. 이 회담에서 북측은 참가국들을 통해 국제사회의 바람이 무엇인지 확인했을 것이다. 북한도 미국에 대북 적대시 정책의 포기를 강조했고, 특히 미국이 북한 체제를 보장만 하면 핵개발을 포기할 수 있다는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이 진실이라면 북한은 차기 6자회담에서 당당하게 미국에 요청할 것은 해야 하고, 핵문제 해결과 북.일 등 관련국 간의 관계개선 의지를 보이는 것이 해법일 것이다. 이 또한 한반도 평화와 남북경협에 도움이 됨을 북한은 알 것이다. 이번 회담에서 남측 대표들은 핵문제 해결을 위한 한.미.일의 조정안과 우리 국민의 바람을 북측 대표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득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 남측, 핵문제 한·미·일案 설득을

중요한 시기에 남북관계 발전에 필요한 많은 시간을 잃어버렸음을 북측은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함께 보충하는 데 힘을 합해야 한다. 이번 회담에서 양측이 협력사업을 진지하게 논의하고, 이산가족의 한을 풀어주려는 노력과 핵문제 해결을 위한 열의를 보이면 국내외의 갈채를 받을 것이다. 또 장관급 회담이 북한이 주장하는 '반 외세적 민족공조'가 아닌 '세계와 같이하는 열린 민족공조'의 기구로 자리매김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남북 모두가 관계발전을 위해 노력해 왔듯이 이 귀중한 기회를 통해 남북 대표들은 서로 신뢰하는 차원에서 성숙한 모습을 보이기를 기대한다.
박재규 경남대 총장.전 통일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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