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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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1부 불타는 바다 땅끝에 선 사람들(54)『나 없던 소리 한 거 아녀.우리가 그런 얘기도 하지 않었어.』 『조씨 이빨 아펐다는 얘기만 하면 되지.왜 날 끌고 들어가고 이러는 거요.
』 『자네도 말을 그렇게 하면 못 쓰는 거여.내가 뭣땜에 자네를 끌고 들어가겠는가.』 『한 적 없는 말을,했다고 하면! 지금 조씨가 일을 만들잖아요.지금!』 길남의 말이 마디마디 끊어지는데 옆에 서 있던 가와무라가 소리쳤다.
『조선말 하지 마라.』 아침 햇살이 노무계 사무실 벽으로 비쳐들고 있던 같은 시간,병원에서 명국은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이시다가 가져다 놓은 의자에 앉아 아랫도리를 담요로 감싸고 명국은 창가에 앉아 있었다.오늘따라 바다도 푸르다.내려다 보이는 건물들의 지붕도 아침햇살을 받아 얼굴을 씻은 듯 싱그럽다.
아침이구나.저게 아침 햇살이구나.창가에 앉아 명국은 혼자 중얼거린다.
이제는 습관이 된 일이다.누가 없어도 좋다.혼자 말하고 혼자대답한다.
이봐,좀 먹어야지.
먹기는,내가 소도 아니겠고.
소도 아니니까 먹어야 살지.
해가 뜨면 뜨는대로 해가 지면 지는대로 어느 새 그렇게 혼자말하고 혼자 대답하는 게 몸에 배었다.옷을 입을 때도 그랬다.
다리를 좀 들어 봐.
들기는.
이 사람아,자네가 안 들면 누가 드나.
차마 그 뭉텅 잘려진 다리를 보지 못해서 옷을 갈아입어야 할때마다 둘은 싸웠다.마음 속의 자기와 마음 밖의 자기가.야 이놈아.혼자 말하고 혼자 대답하는 게 이제는 하루의 시작이 되었구나,명국이 마음 속으로 웃는다.
그나저나 길남이 놈은 왜 며칠 얼굴 보기가 힘든지 모르겠네.
그 녀석이 일을 쳐도 칠 모양인데,어른이라는 게 얼굴을 들 수가 없지 않냐.
마음 속에서 누군가가 소리친다.이놈아,다리 병신 되었으면 주제를 알아야지.네가 어제의 너라더냐.그런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그애는 그애대로 잘 갈거다.헤엄을 치든 뛰어를 가든.
등 뒤로 이시다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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