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기자실통폐합 국고손실, 관련자들이 배상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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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현 정권은 지난 6월 국무회의에서 기자실 철거와 합동 브리핑센터 설치에 필요한 예비비 26억원을 통과시킨 후 집행해 오고 있다. 여야 대선주자들이 정부 정책에 반대한 것은 이미 그 무렵부터였다. 그러니 현 정권은 기자실 통폐합에 들어가는 예산이 헛돈이 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집행한 꼴이다. 새 정권이 기자실 복원에 써야 되는 돈까지 합치면 어림잡아 40억원의 국민 세금이 허공에 흩어지는 셈이다.

낭비와 손실이 눈앞에 보이는 데도 예산 수십억원을 하수구에 뿌리듯 날려버리는 것은 극도의 도덕적 해이다. 국민의 돈이 어떻게 되든 말든 언론에 대한 대통령과 정권의 원한만 복수하면 된다는 치졸한 발상이다. 국가는 ‘조세 정의(正義)’의 이름으로 관련자들로부터 낭비된 세금을 돌려받아야 한다. 아쉽게도 현재는 이런 부도덕한 정책 집행으로 발생한 국고 손실을 구상(求償)할 수 있는 제도가 부족하다. 그래서 뜻있는 학자·변호사들 사이에선 국민대표소송제 도입이 추진되고 있다. 일정한 자격을 갖춘 납세자들이 뭉쳐 책임이 있는 공무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이다. 이 잘못된 정책을 기획·집행한 대통령, 청와대 참모, 처장을 비롯한 국정홍보처 관련자들이 개인재산을 털어서 손해를 배상하도록 하는 제도다. 필요에 따라선 예비비 집행을 승인한 국무위원들에게까지 책임을 묻는 것도 검토할 수 있다. 이미 민간에선 회사의 손실에 대해 경영진이 개인재산으로 주주들에게 책임을 지고 있다. 정권만 끝나면 그뿐이라는 나쁜 관리들에게 정의를 가르쳐 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