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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후보단일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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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게임이론은 1994년부터 수차례나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각광 분야다. 그중 미국 수학자 앨버트 터커(1905∼1995)의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는 고전적 모델로 손꼽힌다. 두 명의 공범 죄수가 독방 취조 과정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형량이 달라진다. 두 명이 모두 자백하지 않으면(상호협력) 1년 형, 모두 자백하면(상호배반) 5년 형을 받는다.

어느 한쪽만 자백하면 자백한 범인(배반자)은 석방되나 다른 공범(협력자)은 20년 형을 받는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두 죄수가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머리를 짜낼수록 상호배반의 선택이 많아진다. 상호협력에 비해 형량은 무겁지만 어느 한쪽이 바가지를 쓰지 않는다.

게임이론은 경제·경영·정치·군사 문제는 물론 부부 관계에까지 두루 응용되고 있다. 과거 두 차례의 대선 후보단일화에 적용하면 결론은 역시 ‘상호배반’이다. 97년 DJP연합은 내각제 합의 파기(DJ)와 임동원 전 국정원장 해임건의안(JP) 사태로 깨졌다. 2002년 대선 직전에는 정몽준 후보가 노무현 후보 지지를 철회하면서 노 후보 측이 공동정부 약속을 폐기하는 걸 지켜봐야 했다.

일각에선 게임이론을 단일화 상황에 적용하는 게 타당하느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실제로 97년 대선 전 상호배반 모델에 따라 ‘DJP연합은 실현 불가능할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현실 예측에 실패한 관련 논문도 있다.

범여권이 이번 대선의 마지막 승부수로 단일화 카드를 만지고 있다. 선진국 정치에서 좀체 보기 힘든 현상이다. 억지로 유사 사례를 찾자면 프랑스 대선 시 결선투표에서 군소 후보·정당이 1∼2위를 상대로 지지선언을 하는 정도다. 하지만 한국 대선 판에선 어느새 단골메뉴가 됐다.

2007년 단일화는 과연 성사될 것인가. 단일화는 DJP연합처럼 합쳐서 승리 가능성이 크거나 노무현·정몽준처럼 지지율이 엇비슷한 2·3위 간에 가능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범여권 후보들의 지지율을 다 합쳐도 1위 후보에 못 미친다. 이들 사이에 끝까지 벼랑끝 전술이 펼쳐지면 ‘치킨(겁쟁이)게임’을 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 모두 합쳐도 이길 수 없을 바에야 내년 총선을 겨냥해 각자 생존을 꾀하는 것이다.

12월 19일, 3700만 명의 유권자들은 능력·자질·정책 면에서 더 낫다고 보이는 후보에게 한 표를 던질 것이다. 소비자 주권시대의 정치는 과연 윈윈 게임을 할 수 있을까.

이양수 정치부문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