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보는 내년 경제 최악 시나리오는 유가 100달러 환율 800원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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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 100달러, 원-달러 환율 800원대'. 내년 경영계획을 짜고 있는 삼성그룹이 가정하고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삼성그룹 고위 임원은 "이미 서부텍사스중질유(WTI) 가격이 80달러대 중반까지 치솟은 지금 이런 가정이 현실화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며 "이 같은 시나리오를 가정해 경영 계획을 짜고 있다"고 말했다.

애초 삼성의 내년도 전망치는 원-달러 환율은 평균 925원, 국제 유가(두바이유 기준)는 배럴당 66.95달러였다. 그러나 두바이유는 16일 현재 사상 최고치인 76.57달러다. 삼성경제연구소 황인성 수석연구원은 "기름값과 환율 흐름이 급격히 변하고 있어 각종 지표 전망치를 수정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룹 측은 각 계열사에 제시한 내년도 유가.환율 전망치를 훨씬 보수적으로 수정.보완해 제시할 방침이다. 지난해 삼성이 예상했던 올해 원-달러 환율은 900~960원, 국제 유가(두바이유)는 배럴당 60~70달러였다.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의 이 같은 전망이 알려지면서 내년 경영계획을 짜기 시작한 다른 그룹들도 비상이다. 유가 오름세와 환율 내림세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데다 미국의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15일 WTI 가격은 배럴당 86.13달러로 치솟았다. 최근의 국제 유가 강세는 중동지역의 지정학적 불안 요인과 겨울철이 다가오면서 세계 석유 수요가 확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배럴당 90달러도 멀지 않았다고 예상했다. 석유뿐 아니다. 철광석.동 등 주요 원자재 가격 역시 최근 한 달 새 10% 가까이 치솟았다. '원자재의 블랙홀'로 불리는 중국의 수요가 늘면서 공급이 달리기 때문이다.

16일 현재 원-달러 환율은 917.5원이다. 기업 관계자들은 내년에도 이 같은 추세가 계속될지 모른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이 800원대로 떨어지면 국내 업종 중 가장 가격 경쟁력이 뛰어난 조선업종(적정 환율 911.3원)조차 채산성을 맞추기 어렵게 된다.

LG그룹은 내년 경영 여건이 올해보다 더 나쁜 상황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LG가 상정하고 있는 시나리오는 '환율 800원대 후반, 국제 유가 70달러 선'이다. 이와 관련, LG경제연구원은 내년 원-달러 환율이 올해 평균(931원)보다 하락한 915원이 될 것으로 관측했다. 반면 기름값(WTI 기준)은 올해 평균(69달러)보다 오른 73달러 선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GS그룹 역시 내년 원-달러 환율이 올 초 제시한 전망치(930원대)보다 20원가량 더 하락한 910원대까지 밀릴 것으로 예상했다. 우리투자증권 송재학 기업분석팀장은 "국제 원자재 가격 급등은 경제 호조에 따른 수요 증가로도 해석돼 반드시 악재로만 볼 수는 없지만 환율 하락은 수출 의존도가 큰 국내 기업엔 큰 타격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의 경우 원-달러 환율이 10원 내리면 한 해 영업이익이 1500억원가량 줄어든다.

표재용.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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