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처음부터 '반값 아파트'는 없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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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른바 '반값 아파트'로 주목받은 경기도 군포 부곡지구의 주공아파트. 15일 견본주택 청약 창구는 한산했다. 방문객보다 주공 직원과 도우미들이 더 많았다. 그나마 청약 창구에 들른 몇몇 고객은 허탈한 표정이었다. 토지임대부 주택에 관심이 있어 왔다는 신혼 주부 박정애(32)씨는 매달 땅에 대한 임대료를 40만원씩 내야 한다는 말에 발길을 돌렸다. 박씨는 "은행 대출이 어려워 토지임대부에 관심이 있었는데 임대료가 비싸 차라리 제 2금융권에서 대출받아 제대로 된 아파트를 사는 게 낫겠다"고 말했다.

부동산 중개업자들도 쓴웃음을 지었다. 군포시 동서남북공인 김규만 사장은 "가뜩이나 시장이 워낙 위축됐는데 누가 이런 반쪽짜리 아파트에 관심을 보이겠느냐"고 반문했다. 군포 시내에 반값 아파트보다도 10%가량 싼 급매물이 널려 있다는 것이다.

첫선을 보인 환매조건부.토지임대부 등 이른바 반값 아파트 실험은 실패로 돌아갔다. 804가구에 대한 1순위 청약에서 모든 부문, 전 평형이 미달됐다. 2순위까지 경쟁률이 0.15 대 1(환매조건부), 0.09 대 1(토지임대부) 에 불과했다. 주공 측은 몇 명 안 되는 청약자조차 실제 계약으로 이어질지 자신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한마디로 시범 아파트는 빈집투성이가 될 공산이 커졌다.

부동산 해법으로 기대했던 환매조건부.토지임대부 아파트가 시장에서 철저히 외면받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재산권 제약이 많은 데다 무늬만 반값 아파트이기 때문이다. 토지임대부 아파트의 분양가는 인근 지역에 비해 55% 수준이다. 분양가만 보면 반값 수준이지만 월 40만원 안팎의 토지 임대료를 따로 내야 한다. 환매조건부 아파트 분양가는 주변 지역 분양가의 90% 수준이다. 여기에다 20년 안에 처분하려면 주택공사에만 되팔 수 있어 자산 증식의 매력이 거의 없다. 아직도 주택을 '주거'보다 '소유'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국민 정서와 너무 동떨어진 실험을 강행한 것이다.

문제는 이번 실패가 부동산업계는 물론 주무부처인 건설교통부조차 예견했던 일이라는 점이다. 군포 부곡지구는 지리적 여건과 생활환경 등을 고려했을 때 청약자들의 관심을 끌기 어려운 곳이다. 그런데도 토지임대부 아파트에는 임대가 아니라 분양 기준으로 땅값마저 비싸게 공급했다. 건교부의 한 관계자는 "반값 아파트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팽배한 상황에서 시범사업과 분양을 더 미룰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전시행정을 위한 희생양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대목이다.

되짚어 보면 반값 아파트 실험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 옛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값싼 주택을 원하는 유권자들을 겨냥해 '반값 아파트'라는 달콤한 당의정을 앞다투어 내놓았다. 건교부도 1.31부동산 대책 때 이를 덜컥 수용했다. 첫 분양이 실패로 돌아가자 청와대.한나라당.건교부는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하지만 누구도 실패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적어도 국민의 눈에는 공범일 뿐이다. 옛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눈앞의 표를 노려 경쟁적으로 반값 아파트 법률을 통과시키고, 정부는 뻔히 실패가 내다보이는 시범 사업을 강행하고…. '반값 아파트'라는 그럴싸한 구호에 속아넘어간 서민들만 표본실의 청개구리가 된 느낌이다. 실망한 표정으로 견본 주택관을 빠져 나오는 방문객들의 축 처진 어깨에 자꾸 눈길이 갔다.

윤창희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