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20% vs 나머지 80%' 대결 노리는 정동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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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얼굴) 대통합민주신당 대통령 후보는 후보 선출 이튿날인 16일 새벽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을 찾았다. 후보의 첫 일정 치곤 파격이다. 평화시장은 그가 대학 시절 어머니의 재단 일을 돕기 위해 들락거리던 곳이라고 한다. 정 후보는 상인들과 악수를 나누며 "다른 건 몰라도 서민들 먹고사는 것과 애달픈 사연은 잘 안다. 서민경제 지킴이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관계기사 4, 5면>

평화시장 방문은 정 후보가 앞으로 대선 레이스를 어떤 구도로 끌고 가려 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이벤트였다. 이른바 '20(가진 자) 대 80(못 가진 자)'의 대결 구도다.

정 후보는 전날 후보 수락연설에서 "여러분은 20%만 잘살고 80%는 버려지는 2 대 8 사회를 원하나. 저는 돈 있고 땅 있는 사람들만을 위한 약육강식 경제, 이명박식 경제를 거부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그는 '한나라당식 정글 자본주의'는 피도 눈물도 없는 시장 만능주의며 이는 이명박 정책의 본질이라고 주장했다.

이 후보가 특목고.자사고.특별기숙학교를 300개 만들겠다고 한 공약에 대해서도 정 후보는 "고교 평준화 해체로 교육 양극화를 부추겨 사회는 20 대 80으로 더욱 갈라질 것"이라고 공격했다. 그는 16일 언론 인터뷰에서 "나도 성장에 방점을 찍고 있다"면서도 "이 후보는 나쁜 성장론자이고 나는 좋은 성장론자"라고 주장했다. "이 후보의 정책은 일회성.거품성 성장이지 지속 가능하지 않다"며 "피도 눈물도 없는 불도저 경쟁은 국민을 불행하게 만든다"는 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정 후보가 이 후보를 따라잡는 전략으로 사회 저변에 퍼져있는 평등의식을 자극하는 방법을 선택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선거 전문가들은 약자가 강자와 대등한 게임을 만들어 가려면 '편가르기→양자 대결구도→중간층 흡수'가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말하고 있다.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후보가 재미를 봤던 '평민 대 귀족' '비주류 대 주류'의 대결구도를 정 후보가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 노 후보의 편가르기는 엘리트 출신인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이미지를 상처 내는 데 맞아떨어졌다. 노 대통령은 집권 뒤에도 '강남 대 비강남' '서울대 대 비서울대' 등의 양자 대결구도를 계속 만들면서 양극화 구도를 통치전략으로 활용했다.

우리 사회의 특성상 '20 대 80'의 구도는 적중만 하면 판세를 뒤흔들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 구도는 이번 대선에서 어느 정도 먹힐 수 있을까. 일단 유권자들의 2002년 학습효과 때문에 식상한 주장으로 비춰질 수 있다.

또 이명박 후보가 '경제 성장' 어젠다를 선점한 것도 '20 대 80' 구도 형성의 장애물이다. "국민의 관심은 먹고사는 문제지 이념 문제가 아니다"는 이 후보의 주장은 유권자들에게 호소력을 발휘해 왔다. '샌드위치 코리아'의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경제의 파이부터 키우자는 여론이 확산된 것도 이 구도를 제약하는 조건이다.

이명박 후보가 밑바닥에서 출발한 인생역정을 갖고 있어 정 후보가 '가진 자' 이미지로 낙인 찍어 공격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분석도 이 후보 쪽에서 나온다.

◆종부세 유지, 양도세 손질 검토=정 후보는 이날 인터뷰에서 현 정부의 부동산 세제와 관련, "전체적인 방향은 맞다. 종합부동산세를 흔들어서는 안 된다"며 "다만 실거래가 6억원 이상 주택을 보유한 1가구 1주택 장기보유자에 대한 양도세는 보완 요구가 합리성이 있는지 여부를 유연하게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양도세 세수가 11조원까지 불어나고 종부세 세수도 불과 3년째에 2조원 이상이 됐으므로 여러 현실적 요구들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정하.김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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