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시론

대한민국의 영토와 NLL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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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북한 지역도 대한민국 영토이고, 북한 정권은 대한민국 영토를 불법으로 강점하고 있는 집단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냉전이 종식되고, 북한과의 관계도 크게 변화되면서 영토조항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나왔다. 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되고, 남북한이 합의 아래 유엔에 동시 가입하는 상황에서 북한의 실체를 부정하기 어려우니, 영토조항은 사문화(死文化)시키고 현행 헌법 제4조인 평화통일조항에 더 큰 무게를 두자는 것이었다. 이러한 해석은 헌법 개정을 통해 영토조항을 삭제하자는 의견으로 연결되면서 더욱 뜨거운 찬반논란을 야기했다.

그러나 헌법학계에서도 제3조의 존재의미를 인정하는 견해가 다수이며,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판례도 영토조항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비록 남북관계가 예전에 비해 많이 개선됐다고 하지만, 아직도 남북 대치상황이 종식된 것이 아니며 탈북자 문제나 통일을 위해서라도 영토조항의 존재가 필요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북한을 독립된 국가로 인정할 경우에는 통일의 당위성을 인정할 근거가 부족해질 뿐만 아니라 중국 등 제3국의 개입을 막기 어려워진다. 또 탈북자를 우리 정부가 나서서 보호할 근거가 없어진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대외적으로는 남북한이 독립된 국가로 활동하더라도 남북관계에서는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이면서 부분적으로는 적대 관계를 염두에 둔 경계 또한 필요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노무현 대통령의 북방한계선(NLL) 관련 발언은 여러 측면에서 논란의 불씨를 제공했다. 영토 수호의 1차적 책무를 지고 있는 대통령이 오히려 우리 영토에 대한 보호를 방기한다는 비판은 접어 두더라도, 과연 이 시점에서 대통령이 이런 발언을 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 그 배경에 어떤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문제되고 있다.

엄밀하게 말하면 NLL은 영토선이 아니다. 영토를 경계 짓는 선이란 국가와 국가 사이의 국경선이다. 남북한 관계는 그런 것이 아니므로 NLL이든 휴전선이든 국경선이 될 수 없다. 이를 국경으로 보는 것은 헌법 제3조에도 위배된다. 한반도의 경계인 압록강과 두만강이 대한민국 영토의 한계, 즉 국경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NLL의 의미를 평가절하하는 이유는 되기 어렵다. 지난 50여 년 동안 국경선 아닌 휴전선이 남과 북을 갈라 놓았듯이, NLL 또한 남과 북의 해상경계선으로서 역할을 해 왔다. 50년 이상 유지돼 왔고, 이를 위해 많은 장병들의 피와 땀이 서려 있는 NLL의 의미를 가볍게 여길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NLL의 변경이나 폐지가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경계선을 설정하는 것에 대해 서해5도 주민 등 우리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사유가 있고, 그 경계선이 남북한 교류 및 중국 어선 침범 방지에 도움이 된다면 북한과 협의해 새로운 해상경계선을 설정하는 것에 반대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그것이 기존의 NLL을 스스로 부정하는 방식이 돼서는 안 된다.

노 대통령의 말대로 NLL이 유엔군 사령부에서 일방적으로 정한 것이고 북한과 합의된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지난 50년 동안 관철되었던 규범력을 스스로 부정할 경우에는 적지 않은 문제가 야기될 것이다. 예컨대 일본과 합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가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독도에 대해서도 NLL과 똑같은 논리를 적용할 것인가?

이러한 중대한 문제는 임기를 4개월여 남겨 두고 있는 노 대통령이 결정하기보다는 차기 정부에 맡기는 편이 타당하다는 점도 지적돼야 한다. 기존에 추진되던 정책을 마무리하는 것도 아니고, 국민적 논란이 많은 문제를 새롭게 제기하면서 임기 중에 무리하게 처리할 경우 차기 정부에 큰 부담을 줄 뿐만 아니라 그 후유증이 매우 심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대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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